남아 있는 것
마키아벨리가 쓴 분류로, 다른 군주에게 빌려 온 군대다. 돈으로 산 개인들인 용병과 다르고, 내가 기른 자기 군대와도 다르다. 차이는 지휘에 있다. 용병은 나에게 고용되지만 원군은 보낸 쪽의 명령 아래 하나로 움직인다. 이 글은 이 분류를 조직으로 옮겨 쓴다. 우리가 값을 치르고 쓰지만 그 방향과 속도를 정하는 손이 바깥에 있는 역량이 여기 들어간다.
Section Ⅰ · He Won the War그는 이겼다
요청한 것을 전부 얻고
자리를 잃었다
14세기 중반 비잔티움은 내전 중이었다. 요한 6세 칸타쿠지노스에게는 상대를 꺾을 병력이 모자랐고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바다 건너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딸 테오도라를 오스만의 지배자 오르한에게 시집보냈고, 그 혼인을 묶어 기병을 얻었다.
빌려 온 군대는 기대한 그대로였다. 잘 싸웠고 트라키아를 휩쓸었다. 칸타쿠지노스는 내전에서 이겼다. 여기까지는 그가 계산한 대로 됐다.
1354년 3월, 갈리폴리 일대에 지진이 났다. 성벽이 무너지고 마을이 주저앉았다. 그 빈자리를 오스만 병력이 차지했다. 황제는 돈을 내밀며 떠나 달라고 했다. 거절당했다.
갈리폴리는 오스만이 유럽에 가지게 된 첫 영구 거점이 됐다. 그 뒤 유럽으로 넘어오는 다리가 그곳이었다. 그리고 내전에서 이긴 칸타쿠지노스는 그해가 가기 전에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자리는 그가 실수한 지점이 아니다. 그는 실수하지 않았다. 동맹을 맺었고, 기병을 받았고, 전쟁에서 이겼다. 요청한 것을 전부 얻었고 계획은 모두 작동했다. 다만 계획에 없던 칸이 하나 있었다. 이긴 다음에 그들을 어떻게 돌려보내는가.
그 칸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기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이 구조의 가장 불편한 성질이다. 비용은 결정이 잘못됐을 때가 아니라 결정이 성공했을 때 청구된다.
Section Ⅱ · Dangerous Because Good용맹해서 위험하다
겁이 많아서 위험한 쪽과
잘 싸워서 위험한 쪽
1513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제13장에 이 사례를 적어 둔다. 콘스탄티노플 황제가 이웃과 맞서려고 투르크 병력 1만을 그리스로 불러들였고, 전쟁이 끝나자 그들이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장에서 그가 세운 구분이 이 글의 중심이다. 밖에서 들여오는 병력을 둘로 가른다. 돈으로 산 개인들인 용병과, 다른 군주에게 빌려 온 원군이다. 그리고 둘 중 원군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유가 뒤집혀 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용병에게서 가장 위험한 것은 비겁함이고, 원군에게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용맹함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돈으로 산 병사는 위험해지면 달아난다. 믿을 수 없다는 뜻이고,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은 적어도 내가 안다. 빌려 온 군대는 반대다. 잘 싸우고 규율이 있고 하나로 움직인다. 다만 그들을 하나로 묶는 명령이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결론이 양쪽으로 닫힌다. 그들과 함께 지면 나는 패배하고, 그들과 함께 이기면 나는 그들의 포로가 된다.
이 구분을 지금 쓰는 말로 옮기면 바로 보인다. 우리가 밖에서 들여오는 역량 중에도 용병인 것이 있고 원군인 것이 있다.
용병은 갈아 끼울 수 있다. 계약을 끝내면 다른 곳으로 바꾸면 되고, 그동안 우리가 일하던 방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설계 외주나 물류 대행처럼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 여기 든다.
원군은 다르다. 성능이 좋고, 우리 업무가 점점 그 구조에 맞춰지고, 데이터가 그쪽에 쌓이고, 다음 버전의 방향과 속도는 바깥에서 정해진다. 기간 시설이 된 클라우드, 영업이 올라타 있는 플랫폼, 그리고 지금 많은 조직이 들이고 있는 AI 공급사가 여기 든다.
둘은 계약서에서 비슷해 보인다. 요금이 적혀 있고 서비스 수준이 적혀 있다.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은 떠나려 할 때다. 용병은 보내면 가고, 원군은 그 자리에 있다.
Section Ⅲ · Who Sets the Pace누가 속도를 정하는가
내 안전을 위한 조치가
나를 덜 안전하게 만든다
이 구조에 이름이 붙은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1950년 존 헤르츠가 안보 딜레마라는 말을 썼고, 로버트 저비스가 1978년에 그 개념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고리는 이렇게 돈다. 오로지 내 안전을 위해 취한 조치가 상대에게는 위협으로 읽힌다. 상대가 응답하고, 그 응답이 나를 전보다 덜 안전하게 만든다. 누구도 상대를 해칠 뜻이 없어도 이 고리는 돌아간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이것을 모든 전쟁의 원인으로 보지는 않았다.
20세기의 사례는 날짜가 또렷하다. 1939년 8월, 아인슈타인과 실라르드의 편지가 나치 독일이 먼저 개발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1942년 맨해튼 공병구가 설치됐고 1945년에 실제로 쓰였다. 1949년 8월 소련이 첫 핵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더 큰 것으로 답했고, 1952년 11월 첫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앞의 걸음에 대한 응답이었고, 각각은 그 시점에서 설명이 됐다.
지금의 AI 투자 경쟁에 이 틀을 그대로 대는 일은 유추다. 자료가 뒷받침하는 결론이 아니라는 뜻이고 이 글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다만 구조의 한 조각은 눈으로 확인된다. 투자의 속도를 정하는 것이 우리 조직의 준비 상태가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예산 회의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문장이 그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먼저 하지 않으면 저쪽이 한다. 이 문장이 강한 이유는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대체로 맞기 때문이다. 다만 그 문장이 통과시키는 것은 투자 결정만이 아니다. 그 투자가 성공했을 때 우리가 어떤 상태가 되어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 통과해 버린다.
Vol. 20에서 기술의 방향이 저절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연구를 다뤘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넓힐지가 선택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번 편은 그 선택이 내려지는 조건을 본다. 상대의 속도가 우리의 시계가 되면 선택지는 줄어들고, 줄어든 선택지에서 고른 것을 우리는 전략이라고 부르게 된다.
조직 안에서도 같은 고리가 작게 돈다. Vol. 85와 Vol. 91에서 본 것이 그 모양이었다. 자기를 지키려고 검토 단계를 하나 붙이면 시스템은 결정권을 잃고, 결정권을 잃은 시스템은 더 못 미더워 보이고, 그래서 단계가 하나 더 붙는다. 각자가 합리적으로 움직이는데 전체는 아무도 원하지 않은 자리로 간다.
그래서 이 글은 밖에서 힘을 빌리지 말라는 말로 닫히지 않는다. 자기 군대만 쓰라는 마키아벨리의 처방은 그의 시대에도 자주 비현실적이었고 지금은 더 그렇다. 쓸모 있는 것은 금지 대신 분류다. 지금 들여오는 이 역량이 갈아 끼울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일이 그 구조에 맞춰지게 되는 것인지. 뒤쪽이라면 들어오는 조건을 적은 만큼 나가는 조건도 적어야 한다.
칸타쿠지노스가 치른 값이 바로 거기 있었다. 그는 돈을 낼 준비가 돼 있었지만 돌려보내는 절차를 미리 만들어 두지 않았다. 불러들일 때 합의한 것은 들어오는 조건뿐이었다. 지금의 계약서도 대개 그렇다. 도입과 요금과 서비스 수준은 꼼꼼한데, 이 관계를 끝낼 때 우리 데이터와 업무 흐름과 사람들의 역량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는 비어 있다.
덧붙여 둘 것이 하나 있다. 이 패턴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브리튼 쪽이다. 로마가 떠난 섬에서 주민들이 색슨 전사들을 불렀고 그들이 돌아서서 새 지배자가 됐다는 이야기인데, 사료로는 약하다. 가장 이른 기록은 6세기 성직자 길다스가 남긴 설교문이고, 449년이라는 연도는 300년 뒤에 계산된 값이다. 그래서 이 글은 기록이 또렷한 쪽을 골랐다.
그 약함이 오히려 한 가지를 알려 준다. 길다스는 폐허를 보고 있었고, 폐허에는 원인이 필요했다. 결과를 아는 사람이 쓴 이야기에는 언제나 결정적인 결정 하나가 들어 있다. 우리가 실패한 사업을 복기할 때 그 결정 하나가 늘 또렷하게 보이는 이유도 같다. 당시에는 여러 갈래였던 선들이 뒤에서 보면 하나로 모인다.
칸타쿠지노스는 판단을 그르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계산한 것을 전부 얻었고, 그래서 자리를 잃었다. 이 구조의 비용은 결정이 틀렸을 때가 아니라 결정이 성공했을 때 청구된다.
마키아벨리가 그 사례에서 뽑아낸 문장은 500년이 지나도 번역이 쉽다. 빌려 온 힘과 함께 지면 나는 패배하고, 함께 이기면 나는 그들의 포로가 된다. 지금 우리가 그 문장을 읽을 자리는 전쟁터가 아니라 계약서의 해지 조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