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남았다
사람을 조건과 무관한 기준으로 두 집단에 나눠 한쪽에만 제도를 적용하고 결과를 비교하는 설계다. 설문이나 사후 비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재택을 고른 사람과 고르지 않은 사람을 견주면 원래 다른 사람들을 견주게 되는데, 무작위로 나누면 그 차이가 평균적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남은 차이를 제도의 효과로 읽을 수 있다.
Section Ⅰ · The Coin Flip생일로 나눴다
근거가 없는 사안이 아니라
근거를 보지 않는 사안이다
사무실에 며칠 나오게 할지는 대개 회의실에서 정해진다. 협업이 줄어든다거나 신입이 배우지 못한다거나 문화가 흐려진다는 말이 오가고, 어느 쪽도 자료를 들고 오지 않는다. 각자 자기가 겪은 것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는 드물게 무작위 대조 실험이 있다. 2021년과 2022년에 걸쳐 한 대형 기술기업이 항공과 IT 두 부문의 대졸 엔지니어, 마케팅, 재무 직원 1,612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돌렸다. 전사 도입을 결정하기 전에 효과를 재 보기로 한 것이다.
배정 기준이 이 연구의 설계를 말해 준다. 생일 날짜의 홀짝이었다. 날짜가 홀수인 사람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재택을 선택할 수 있는 집단에, 짝수인 사람은 전과 같이 전일 출근하는 대조군에 들어갔다. 생일은 업무 능력이나 성향과 아무 관계가 없으므로, 두 집단은 제도를 빼면 평균적으로 같은 사람들이다. 여섯 달 뒤에 남은 차이는 제도의 차이다.
이 설계가 왜 중요한지는 보통의 비교를 떠올리면 분명해진다. 재택을 신청한 사람과 신청하지 않은 사람의 성과를 견주는 일은 조직에서 흔하다. 그런데 신청한 사람은 애초에 다른 사람이다. 집이 멀거나, 아이가 있거나,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하거나, 일에 덜 매여 있을 수 있다. 그 비교에서 나온 숫자는 제도의 효과가 아니라 사람의 차이를 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생일로 나누면 그 문제가 사라진다.
Section Ⅱ · What Changed무엇이 달라졌나
사람은 남았고
일하는 모양이 바뀌었다
여섯 달 뒤의 결과는 세 갈래로 읽힌다. 첫째는 머무름이다. 하이브리드 집단의 이직률이 33% 낮았고 직무만족 지표가 올랐다. 사람을 한 명 잃고 다시 뽑아 자리에 앉히기까지의 비용을 아는 조직이라면 이 숫자의 값을 안다.
둘째는 성과다. 성과 평가와 승진율에서 두 집단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학술지 게재본은 추적을 더 밀고 나가, 이후 2년의 승진에서도 전체적으로나 주요 하위 집단에서나 차이가 없었고 엔지니어의 코드 작성량에도 영향이 없었다고 보고한다. 재택이 성과를 떨어뜨린다는 예상이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셋째가 덜 알려졌는데 실무에는 가장 쓸모 있다. 일하는 모양이 바뀌었다. 재택한 날에는 근무시간이 줄고 출근한 날과 주말에는 늘어, 한 주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그리고 메시지와 화상통화가 늘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조건이 붙는다. 모두가 사무실에 있는 날에도 늘었다.
이 마지막 사실이 하이브리드를 며칠 집에서 일하느냐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깬다. 한 주에 이틀 떨어져 일하기 시작하면 조직은 그 이틀을 견디기 위해 기록하고 남기고 비동기로 주고받는 방식을 익힌다. 그렇게 익힌 방식은 다 같이 모인 날에도 그대로 쓰인다. 제도가 바꾼 것은 장소보다 소통의 양식이다.
그래서 이 결과는 Vol. 63에서 본 것과 나란히 선다. 거기서는 도구를 들이자 질문이 늘고 연결이 늘었다. 여기서는 떨어져 일하자 기록과 비동기가 늘었다. 두 경우 모두 변화의 본체는 도구나 장소가 아니라 그것이 강제한 관행이었다.
Section Ⅲ · Who Decides정하는 사람
관리자는 덜 재택했고
더 많이 그만뒀다
이 실험에서 가장 리더십다운 발견은 평균이 아니라 분포에 있다. 관리자와 비관리자의 평가가 정반대로 갈렸다.
비관리자는 실험에 더 많이 자원했고, 재택이 가능한 날에 실제로 더 많이 집에서 일했고,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하이브리드에 배정됐을 때 이직이 줄었다. 네 가지가 모두 같은 방향이다.
관리자는 네 가지가 모두 반대였다. 덜 자원했고, 가능한 날에도 덜 재택했고, 하이브리드가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고, 하이브리드 집단에 배정됐을 때 이직률이 오히려 높아졌다.
마지막 항목을 한 번 더 읽을 필요가 있다. 관리자에게는 이 제도가 머무를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사정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관리자의 일은 사람을 보고 조율하고 끼어드는 일이어서, 떨어져 있으면 더 어려워지고 더 많은 품이 든다. 비관리자에게 이틀의 재택이 선물이라면 관리자에게는 같은 이틀이 추가 업무다. 그래서 두 집단이 같은 제도를 정반대로 겪는다.
문제는 그 제도를 정하는 쪽이 후자라는 데 있다. 조직의 근무 정책은 관리자 회의에서 결정되고, 관리자들은 자기 경험을 근거로 삼는다. 그 경험은 진짜이고 왜곡도 아니다. 다만 한 사람분이고, 조직 다수의 경험과 체계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이 실험의 관리자들은 생산성 효과의 방향 자체를 틀리게 예측했다.
Vol. 59에서 평탄화와 관리의 재배치를 다루며 관리자의 자리가 달라지고 있다고 썼다. 이번 편이 더해 주는 것은 그 자리가 조직을 보는 창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창이 하나뿐이면 보이는 것도 하나다. 리더가 할 일은 자기 창을 믿지 않는 쪽이고, 그러려면 재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 연구의 조건과 한계를 적어 둔다. 중국의 한 기업이고, 대졸 사무직이고, 주 2일이라는 특정한 설계다. 공동 저자 한 명이 그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전 최고경영자이며 현 의장이라는 점이 논문에 밝혀져 있고, 저자들은 회사로부터 자금을 받지 않았으며 결과와 논문을 회사가 미리 검토하지 않았다고도 적었다. 실험은 미국경제학회에 등록됐는데, 등록 시점은 실험이 시작된 뒤이고 자료 분석 전이다. 한국의 복귀 논쟁에 이 숫자를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래도 옮길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사안이 재어 볼 수 있는 사안이라는 사실, 그리고 재 봤더니 결정권자의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이다. 우리 조직에서 같은 실험을 하면 다른 숫자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숫자가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재지 않을 이유가 아니라 재야 할 이유다.
근무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이유는 양쪽 모두 진심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집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 경험을 정확히 보고하고 있다. 그 경험들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이 실험이 보태는 것은 제3의 의견이 아니다. 의견을 모으는 대신 재 보는 방법이다. 그리고 재 봤을 때 가장 크게 틀린 쪽이 정하는 쪽이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