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44 · Vasa, 1628 역사 · Deep read
Vasa Museum · Fairley, IEEE Software (2003)

시험은
말했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서른 명이 갑판을 세 번 가로질렀을 때 시험은 중단됐다. 출항은 중단되지 않았다.

1628년 스웨덴 최대의 전함 바사호는 첫 항해에서 1.3킬로미터를 가고 가라앉았다. 원인은 불안정한 설계였지만, 그 사실은 출항 전에 이미 드러나 있었다. 왕의 요구는 계속 바뀌었고, 설계자는 죽었고, 기울기 시험은 실패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말할 통로가 없었다.

Changing Orders요구가 배를 바꿨다
The Lurch Test시험은 말했다
No Question Asked아무도 묻지 않았다
원전
Why the Vasa Sank: 10 Problems and Some Antidotes for Software Projects Vasa Museum (Stockholm) · Fairley & Willshire, IEEE Software (2003)
Previously on Vol. 43
감정의 출처감정은 데이터지 명령이 아니다. 다만 데이터에는 출처가 있다. 앞 회의의 화는 다음 결재로 흘러간다.
용어 · 이 글에서의 정의
요구 누적 Requirements Creep

이 글에서 '요구 누적'은 변경 하나하나는 그럴듯했는데, 그 합이 처음 설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를 말한다. 바사호의 교훈을 정리한 페얼리는 이렇게 적었다. 2년 반의 건조 기간 동안 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Section Ⅰ · Changing Orders요구가 배를 바꿨다

작은 배로 시작해
큰 배로 끝났다

1628년 8월 10일 오후, 스웨덴 왕실 해군의 새 전함 바사호가 스톡홀름 항구를 떠났다. 1.3킬로미터쯤 갔을 때 약한 돌풍이 배를 옆으로 눕혔다. 열린 포문으로 물이 들어왔고 배는 그 자리에서 가라앉았다. 스웨덴이 그때까지 벌인 사업 가운데 가장 비싼 배였다.

333년 뒤인 1961년에 인양된 배를 연구자들이 측정하고 기록을 뒤졌다. 배가 가라앉은 직접 원인은 단순했다. 불안정했다. 그런데 왜 불안정한 배가 지어졌고, 왜 불안정한 줄 알면서 띄웠는지를 따라가면 오늘의 프로젝트와 놀랍도록 닮은 장면이 이어진다. 소프트웨어공학자 리처드 페얼리가 2003년 『IEEE Software』에 이 사건을 열 가지 교훈으로 정리한 이유다.

시작은 평범했다. 1625년 1월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조선공 헨리크 휘베르트손과 네 척을 짓는 계약을 맺게 했다. 작은 배 둘, 큰 배 둘. 그해 9월 폭풍으로 해군이 배 열 척을 잃자 왕은 작은 배를 서둘러 먼저 지으라고 명했다. 바사호는 그렇게 작은 배로 착공했다.

용골이 놓인 뒤 왕은 덴마크에서 포갑판이 두 층인 큰 배를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명령이 바뀌었다. 짓고 있는 배를 키우고, 닫힌 포갑판을 두 층으로 늘리라는 것이었다. 스웨덴에서 그런 배를 지어 본 사람은 휘베르트손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이미 놓인 용골에 이음매를 하나 더 붙여 길이를 늘렸고, 폭은 위쪽에서만 넓힐 수 있었다. 무게 중심이 올라갔다.

포 구성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한 층 배에 맞춰 두었던 계획이 두 층 배로 커졌고, 결국 위층에도 무거운 24파운드 포를 싣기로 했다. 왕은 성경과 신화를 새긴 금박 조각 수백 점으로 배를 꾸미게 했다. 하나하나는 이유가 있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바뀐 설계를 적은 명세서나 도면은 지금까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First of its kind
2
닫힌 포갑판 두 층. 스웨덴에서 누구도 지어 본 적 없는 배였다
Lurch test
30
갑판을 가로질러 뛴 인원. 세 번 만에 배가 넘어갈 듯해 시험을 멈췄다
Maiden voyage
1.3km
첫 항해에서 간 거리. 약한 돌풍 한 번에 배가 누웠다
Accountability
0
처벌받은 사람. 조사받은 이들은 뒤에 모두 승진했다

Section Ⅱ · The Lurch Test시험은 말했다

시험은 멈췄고
출항은 멈추지 않았다

1627년 설계자 휘베르트손이 병으로 죽었다. 일은 조수 헤인 야콥손이 이어받았다. 계획은 휘베르트손의 머릿속에 있었고, 적힌 것이 없었다. 페얼리의 정리에 따르면 그 무렵 선체, 조각, 삭구, 포, 밸러스트를 맡은 다섯 무리 400명이 거의 서로 조율하지 않은 채 일했다. 스웨덴에서 한 사업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현장이었다.

출항을 앞두고 기울기 시험이 열렸다. 선장 쇠프링 한손이 준비했고, 클라스 플레밍 제독이 지켜봤다. 서른 명이 갑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뛰어 배를 흔드는 방식이었다. 세 번 왕복했을 때 배가 너무 크게 흔들려 부두에서 넘어갈까 두려울 정도였고, 시험은 거기서 멈췄다.

고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배에는 밸러스트가 120톤쯤 실려 있었는데 안정시키려면 그 두 배가 넘게 필요했다. 선창 바닥 아래에는 더 넣을 공간이 없었고, 억지로 넣으면 아래층 포문이 물에 잠길 판이었다. 바사호 박물관이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플레밍 제독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폐하께서 계셨더라면!" (Vasa Museum, The Inquest · 기울기 시험 뒤 플레밍 제독의 말로 전함)

왕은 폴란드와 전쟁 중인 전선에 있었다. 왕은 배를 7월 25일까지 준비하라고 했고, 그러지 못하면 책임자에게 문책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는 계속 편지를 보내 배를 서둘러 바다에 띄우라고 재촉했다. 시험 결과는 왕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배는 기한보다 2주 넘게 늦은 8월 10일에 출항했다.

뒤에 열린 청문에서 갑판장은 제독과 나눈 대화를 증언했다. 제독이 포문이 물에 너무 가깝다고 하자 갑판장은 배가 바로 서 있기를 신께 빌 뿐이라고 답했고, 제독은 조선공이 전에도 배를 지어 봤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위험을 본 사람과 결정할 사람 사이에 말은 오갔지만, 그 말은 결정이 되지 못했다. 설계를 이어받은 야콥손은 시험 자리에 없었고 결과도 몰랐다.

How a Known Risk Went to Sea
알려진 위험이 바다로 나간 경로
01
요구가 쌓였다
Creep · 스폰서의 변경
경쟁국 소식이 오자 짓던 배를 키웠다. 변경마다 이유가 있었지만, 그 합이 처음 설계의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을 셈한 사람은 없었다.
02
기록이 없었다
Undocumented · 사람이 곧 계획
바뀐 설계는 설계자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그가 죽자 계획도 함께 떠났고, 400명은 서로 모르는 채 각자의 부분을 지었다.
03
결과가 오르지 못했다
Unreported · 기한과 문책
시험은 실패했다. 그러나 결정권자는 멀리 있었고, 기한을 넘기면 문책한다고 했다. 나쁜 결과를 올려 보낼 통로가 없었다.

Section Ⅲ · No Question Asked아무도 묻지 않았다

책임은 죽은 사람에게,
승진은 산 사람에게

침몰 다음 날 스웨덴 국가평의회가 조사를 시작했고, 9월에는 정식 청문이 열렸다. 선장은 곧바로 투옥됐다가 풀려났다. 조선공 야콥손은 배가 왕이 승인한 휘베르트손의 설계대로 지어졌다고 증언했다. 결국 비난은 이미 한 해 전에 죽어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설계자에게 향했다. 바사호 박물관의 정리는 짧다. 공식적으로 비난받거나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고, 조사받은 이들은 뒤에 모두 승진했다.

페얼리가 가장 무겁게 본 대목은 따로 있다. 청문 기록 어디에도 배가 어떻게, 왜 불안정해졌는지, 불안정한 줄 알면서 왜 띄웠는지를 묻는 질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 증인이 배가 "아래보다 위가 무겁다"고 말했지만, 두 번째 포갑판의 무게나 포와 조각을 추궁한 사람은 없었다. 그 질문은 결국 왕의 요구를 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하게 덧붙이면, 당시에는 배의 무게 중심과 복원력을 계산하는 방법 자체가 없었다. 선장들은 배의 성질을 몰아 보며 익혔다. 그러니 바사호의 실패를 한 사람의 무능으로 읽으면 요점을 놓친다. 모르는 것을 짓는 일은 늘 있다. 문제는 모르는 채로 지으면서, 그 사실을 드러낸 시험마저 결정에 닿지 못하게 한 구조였다.

이 장면은 Vol. 40의 화성과 정반대다. 정조는 착공 전해에 설계를 마쳤고 모든 과정을 의궤에 적었다. 바사호는 짓는 동안 설계가 바뀌었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그리고 Vol. 28에서 본 것처럼, 위계가 가파른 곳에서는 위험을 본 사람이 가장 늦게 말한다.

Before You Launch · 띄우기 전에
바사호가 통과하지 못한 다섯 질문
01
변경의 합을 누가 세고 있는가?
요구 하나하나를 승인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 합이 처음 설계를 넘었는지 보는 사람은 없기 쉽다. 누적 변경을 한 장에 모아 보는 자리가 있는가.
02
핵심 인물이 내일 빠지면 계획이 남는가?
설계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다면, 그 사람이 곧 단일 장애점이다. 바뀐 결정이 그때그때 적히고 있는가(Vol. 40).
03
해 본 적 없는 것을 몇 개나 겹쳤는가?
새로운 규모, 새로운 구조, 새로운 무기를 한 번에 시도했다. 선례 없는 요소가 늘수록 시험의 비중을 키워야 한다.
04
나쁜 시험 결과가 결정권자에게 닿는가?
기한과 문책이 걸린 곳에서 실패한 시험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결과가 자동으로 결정 자리에 오르는 경로가 있는가(Vol. 28).
05
사후 조사가 '왜'를 묻는가?
책임자를 찾는 조사는 구조를 보지 못한다. 가장 불편한 질문, 곧 요구를 낸 쪽에 대한 질문까지 가는가(Vol. 13).

AI 프로젝트에서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경쟁사 발표를 본 스폰서가 범위를 키우고, 모델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규모로 커지며, 평가 지표가 위험을 말해도 출시일은 그대로다. 바사호의 교훈은 기술이 부족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시대에도 시험은 정확했다.

바사호는 지금 스톡홀름의 박물관에 서 있다. 가라앉지 않았다면 남지 못했을 배다. 리더가 설계할 것은 배가 아닌, 나쁜 소식이 배보다 먼저 도착하는 길이다.

Synthesis · Vol. 44

시험이 말해도,
전할 통로가 없었다

바사호는 작은 배로 시작해 큰 배로 끝났다. 왕은 용골을 놓은 뒤에 배를 키우고 포갑판을 두 층으로 늘리라고 명했다. 스웨덴에 그런 배를 지어 본 사람은 없었고, 바뀐 설계를 적은 명세서도 남아 있지 않다. 설계자가 죽자 계획은 그의 머릿속과 함께 사라졌다.

기울기 시험은 배가 넘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은 전쟁터에 있었고, 기한을 넘기면 문책하겠다고 했다. 사고 뒤 조사는 이미 죽은 설계자에게 책임을 돌렸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리더가 설계할 것은 배가 아닌, 나쁜 시험 결과가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Vasa · 1628 — Leadership Insight
More from Leadership Ins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