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간 선
한 건을 더 팔 때 따라붙는 수익과 비용이다. 회계상의 마진과 범위가 다르다. 마진은 제품을 만드는 값을 보고, 단위경제는 그 한 건을 팔아서 지키기까지 드는 값을 함께 본다. 고객을 데려오는 데 쓴 돈과 그 고객을 떠받치는 데 드는 돈이 모두 들어간다. 그래서 제품 원가는 남는데 단위경제는 적자인 상태가 가능하고, 그 상태로도 매출은 아주 빠르게 늘 수 있다.
Section Ⅰ · A Thousand Unicorns유니콘 1,000곳
빨리 커진 회사들이
어디까지 갔는지 세어 봤다
창업자가 받는 조언은 오래도록 하나였다. 성장을 무엇보다 앞세우라는 것이다. 벤저민 할렌과 론 티드하르, 캐슬린 아이젠하트가 2026년 11·12월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은 그 조언의 뒷면을 센다.
저자들이 2025년에 들여다본 것은 지난 10년 동안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 1,000곳 이상이다. 그 가운데 번듯한 상장사가 된 곳은 150곳이 되지 않았다. 기업가치 10억 달러라는 문턱을 넘는 일과 오래 가는 회사가 되는 일 사이에 그만한 간격이 있었다.
저자들이 지목하는 원인은 속도 자체가 아니다. 규모를 서둘러 좇는 동안 단위경제가 약한 사업 모델에 정착해 버리는 것이다. 매출이 늘고 제품과 시장이 맞물리는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아래의 셈을 비워 두면 사업은 끝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무비패스가 그 모양을 잘 보여 준다. 정액 월 요금으로 사실상 무제한 영화 관람권을 내준 회사였고 수백만 명의 고객을 모았다. 문제는 거래 하나하나에서 돈을 잃었다는 것이다. 고객이 낼 수 있는 값에는 한계가 있고 극장이 표를 내주는 값에도 한계가 있어서, 단위경제가 흑자로 넘어갈 길이 없었다. 회사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저자들은 네트워크 효과에 거는 기대도 같은 자리에서 흔들린다고 적는다. 규모가 아주 커지면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가 되리라는 생각이다. 그 논리가 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단위경제를 잘못 읽은 결과다. 저자들이 살핀 아동 중고의류 거래 장터가 그런 경우였다. 부모들이 편리함을 좋아해 계속 들어왔고 네트워크 효과가 매출을 끌어올렸는데, 창업자들은 거래 한 건에 드는 높은 비용을 잊고 있었다.
Section Ⅱ · Grow and Then Gouge키우고 나서 고친다는 계획
미뤄 둔 수선은
대개 돌아오지 않는다
단위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키우는 경우는 드물다. 더 흔한 것은 알면서 미루는 쪽이다. 나중에 가격을 올리거나 비싼 서비스를 덜어 내면 된다는 계획이다. 저자들은 이것을 키운 다음 쥐어짜는 전략이라고 부르고, 그 전략이 좀처럼 성사되지 않는다고 적는다.
이유가 단순하다. 제품과 시장의 맞물림이 그 가격과 그 구조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이 서비스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그 값과 그 편의가 들어 있다. 값을 올리고 편의를 덜어 내면 맞물림 자체가 흔들린다. 두 가지를 따로 조정할 수 있다는 가정이 틀린 것이다. 저자들은 성장이 시작된 뒤 가격을 크게 올리거나 비용 구조를 다시 짠 스타트업을 거의 떠올리지 못한다고 쓴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매출이 빠르게 오르는 동안에는 고칠 계획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손실을 감당해 줄 투자자가 뒤에 있으면 더 그렇다. 그래서 수선은 미뤄진 것이 아니라 일정에서 빠진 상태가 된다.
이 대목에서 Vol. 23과 이어진다. 그 편은 실행이 싸질수록 드러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빨라지면 안 되는 결정들이다. 이번 편은 그 목록에 하나를 구체적으로 올린다. 단위경제가 증명되기 전의 규모 확대다. 느리게 가야 하는 이유가 신중함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음에 있다는 점에서 두 편의 논리가 같다.
Vol. 70과도 나란히 둘 만하다. 그 편에서 IT 프로젝트 1,471건의 평균 비용 초과율은 27%였고 그 뒤에 여섯 중 하나가 평균 200%로 서 있었다. 평균만 보면 관리 가능해 보이지만 꼬리가 사업을 끝낸다는 이야기였다. 유니콘 1,000곳 가운데 150곳이라는 숫자도 같은 모양이다. 성공 사례만 세면 성장 우선 전략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저자들이 이 발견을 스타트업 밖으로 넓히는 대목도 적어 둘 만하다. 통찰은 벤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서 나왔지만, 같은 양상과 같은 실수를 중소기업과 새 사업을 시작하는 대기업에서도 봤다는 것이다. 사내 신사업이 초기 성장 지표로 평가받는 조직이라면 같은 자리에 서 있다.
Section Ⅲ · Foundation First토대를 먼저 놓는다
미리 센 회사들이
무엇을 셌는지 본다
저자들이 드는 반대편 사례가 구체적이다. 렌트 더 런웨이는 결혼식이나 무도회 같은 자리에 입을 디자이너 드레스를 빌려주는 회사로 출발했다. 창업자들은 먼저 디자이너들과 이야기해 도매 가격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했다. 단위 비용을 크게 낮추는 일이다.
동시에 수요와 가격을 시험했다. 드레스 100벌을 확보해 여학생 모임과 사교 클럽을 겨냥한 임시 대여 행사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수익 쪽 동인과 비용 쪽 동인을 함께 손에 쥐게 된다. 앞쪽은 제품과 시장의 맞물림과 지불 의사이고, 뒤쪽은 드레스 구입비와 세탁비, 그리고 한 벌을 교체하기 전까지 몇 번이나 빌려줄 수 있는가다. 초기 사용자에게 천천히 서비스를 열면서 고객 획득 비용도 알게 됐다. 성장을 밟을 준비가 됐을 때 사업 모델은 이미 단위 수익성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스타벅스의 초기도 같은 규율을 보여 준다. 빠른 확장으로 뛰어들기 전에 하워드 슐츠와 그의 팀은 매장 후보지마다 수익성을 따져 봤다. 슐츠가 회고록에 적은 기준은 단순하다. 문을 연 첫해에 매장을 짓는 데 들인 1달러당 2달러의 매출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율 자체는 그 업종과 그 모델에 묶인 숫자이지만, 매장 단위의 셈을 지켰다는 점이 지역 확장의 함정을 피하게 했다.
두 사례에서 공통된 것은 미룬 일의 종류다. 둘 다 수요를 확인하는 일은 일찍 했다. 미룬 것은 규모다. 저자들이 정리한 세 가지 원칙이 이것을 한 줄로 요약한다. 넓게 실험하고, 가차 없이 단순하게 만들고, 의도적으로 성장을 미룬다.
AI를 다루는 조직에 이 글이 닿는 자리도 분명하다. 저자들이 비용 쪽에서 물으라고 적은 질문 가운데 하나가 어떤 활동이 정말로 사람의 노동을 필요로 하고 어떤 것이 단순화되거나 자동화되거나 인공지능에 넘겨질 수 있는가다. 이 질문은 비용을 줄이려는 물음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모델의 형태를 정하는 물음이다. 어디까지 사람이 해야 하는지가 정해지면 한 건을 더 팔 때 드는 값이 정해지고, 그 값이 성장의 상한을 정한다.
이 글의 성격도 적어 둔다. 이것은 동료 심사를 거친 논문이 아니라 연구자들이 쓴 실무 기고다. 유니콘 1,000곳과 150곳이라는 숫자는 저자들이 자기 연구로 제시한 것이고, 이 글은 그 원자료를 확인하지 않았다. 번듯한 상장사라는 기준이 어떻게 정의됐는지도 기고문에는 적혀 있지 않다. 사례들도 공개된 이야기에서 골라 온 것이라 생존 편향의 반대편, 곧 실패 사례만 모아 교훈을 읽는 쪽으로 기울 여지가 있다. 그러니 수치보다 순서에 무게를 두고 읽는 편이 맞는다.
그 순서를 조직의 말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새 사업의 첫 보고서에 사용자 수와 성장률이 먼저 오는지, 아니면 한 건을 팔 때 드는 값이 먼저 오는지다. 앞쪽만 있는 보고서를 몇 분기 받다 보면 그 사업은 이미 굳어 있다.
빨리 키우라는 조언이 오래 통한 이유가 있다. 빨리 키운 회사들 가운데 크게 성공한 사례가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한 일은 그 사례들 옆에 나머지를 세워 둔 것이다.
그 숫자가 바꾸는 것은 속도에 대한 태도보다 순서에 대한 태도다. 성장은 약한 모델을 고쳐 주지 않는다. 그 모델을 더 많은 거래 위에 옮겨 놓을 뿐이고, 거래가 많아질수록 고치는 값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