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틀과 맞지 않는 틀
어떤 직업이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 맞는다고 느끼는 정도다. 연구진은 이것을 설문 한 문항으로 쟀다. 그 직업이 나의 정체성과 자기 개념에 들어맞느냐는 물음이다. 할 수 있느냐와 다르고 하고 싶으냐와도 다르다. 할 수 있는지는 기술의 문제이고 하고 싶은지는 선호의 문제인데, 이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나라는 그림이 그려지느냐의 문제다.
Section Ⅰ · A Price on Switching직업을 바꾸는 값
배우라는 말에
값을 매겨 물었다
일자리가 흔들릴 때 나오는 답은 대개 하나다. 새 기술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만큼 배우러 가지 않는다. 이유로 꼽히는 것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자신감이다. 알렉시아 델피노와 공저자들이 2026년에 내놓은 연구는 그 목록을 의심하고, 답을 설문으로 받지 않고 선택으로 받아 냈다.
설계는 이렇다. 연구진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공공고용서비스망 가운데 하나와 손잡고, 실제로 교육과 직업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실업 상태의 구직자 1,100명을 모았다. 가상의 응답자가 아니다. 그 결정을 지금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선택실험을 돌렸다. 일반적인 사무 역량 과정과, 배정된 직종으로 바꾸는 리스킬링 과정을 놓고 거듭 고르게 한다. 과정마다 가격과 기간, 수업 방식, 수료 뒤 취업 확률 같은 조건이 달라진다. 조건을 바꿔 가며 선택을 받으면 그 사람이 직업을 바꾸는 일에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를 값으로 뽑아낼 수 있다.
배정된 직종은 둘이다. IT 지원직과 건설 기술직이다. 둘 다 수요가 많고, 둘 다 사무적 조정 업무를 포함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으로 골랐으며, 과정의 조건은 설계로 맞춰 두었다.
결과가 한쪽으로 쏠렸다. 응답자들은 IT로 바꾸는 교육에 평균적으로 시간당 약 3.5유로를 내겠다고 했다. 건설 기술직으로 바꾸는 교육은 시간당 약 5.3유로를 받아야 가겠다고 했다. 믿음과 인구학적 특성을 통제한 뒤의 값이다. 한쪽은 값을 치르고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쪽은 값을 받아야 들어가는 문이다.
Section Ⅱ · Identity Fit그 일을 하는 나
기술이 가깝다고
마음이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두 직종의 차이를 설명할 후보는 여럿이다. 기대 임금이 다를 수 있고, 지금 가진 기술과의 거리가 다를 수 있고,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변수들을 모두 재서 넣었다.
기대 임금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믿음은 차이의 일부를 설명했다. 그런데 가장 크게 남은 개인 변수는 따로 있었다. 정체성 적합이다. 그 직업이 자기와 맞는다고 느끼는 정도이며, 저자들의 표현으로는 지각된 기술 인접성과 임금 기대를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개인 수준의 장벽이다.
같은 직종 안에서 갈라 보면 크기가 드러난다. 건설 기술직에서 정체성 적합이 평균 아래인 사람들이 요구한 보조금은 시간당 10유로까지 올라갔다. 평균 위인 사람들은 같은 과정에 시간당 3.8유로를 내겠다고 했다. 같은 직업, 같은 조건의 과정인데 한 변수로 부호가 바뀌고 폭은 시간당 14유로 가까이 벌어진다.
과정의 조건 가운데 응답자들이 가장 높이 친 것도 적어 둘 만하다. 수료한 뒤에 실제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였다. 수요가 많은 직종을 겨냥한 교육이라 해도, 사람들이 확인하고 싶어 한 것은 그 직종이 아니었다. 그 과정이 취업으로 이어지는지였다.
Vol. 19에서 배우는 속도를 다뤘다. 직무가 바뀌는 속도를 사람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였고, 조직이 갈아 끼우기 대신 다시 기르기를 택해야 한다는 쪽으로 닫았다. 이번 편은 그 처방이 개인에게 닿는 자리를 본다. 조직이 다시 기르기로 마음먹어도, 사람이 그 방향으로 자기를 옮겨 그릴 수 없으면 교육은 비어 있는 자리로 남는다.
Section Ⅲ · What Moved and What Didn't움직인 것과 움직이지 않은 것
정보는 들었고
마음가짐은 듣지 않았다
연구진은 관찰에서 멈추지 않고 두 가지 개입을 무작위로 섞어 넣었다. 응답자의 3분의 1에게는 배정된 직종의 임금과 공석 자료를 담은 짧은 영상을 보여 줬다. 다른 3분의 1에게는 성장 마인드셋 영상을 보여 줬다. 교육을 거쳐 직업 정체성을 바꾼 여성의 이야기와,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이 담긴 영상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대조군이었다.
정보 영상은 들었다. 리스킬링에 대한 지불 의향을 뚜렷하게 올렸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일부 응답자에 대해서는 12개월에서 17개월 뒤의 행정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IT 쪽에서는 이 영상이 실제 교육 등록과 그 분야 취업을 모두 올렸다. 설문에서의 응답이 아니다. 기록에 남은 행동이다.
성장 마인드셋 영상은 듣지 않았다. 효과가 작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저자들이 거기에 붙인 해석은 담담하다. 학습과 정체성에 관한 지각된 장벽은 더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Vol. 69와의 관계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 편은 조직이 재능을 정해진 것으로 보는지 자랄 수 있다고 보는지가 협업과 혁신과 정직의 수준을 예측한다는 연구였다. 이번 결과가 그것을 뒤집지는 않는다. 두 연구가 겨냥한 대상이 다르다. 앞의 것은 조직이 무엇을 믿는다고 구성원이 읽는지를 오래 쌓인 환경으로 보았고, 이번 것은 영상 한 편으로 개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물었다. 환경이 규범을 만든다는 결과와 짧은 설득물이 정체성을 옮기지 못한다는 결과는 함께 성립한다.
리더가 가져갈 구분은 그래서 이렇게 된다. 마음가짐을 말하는 일과 마음가짐이 자라는 자리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영상이고 후자는 누구를 에이스라 부르는지, 첫 실패 뒤 다음 과제가 다시 가는지 같은 것들이다.
정보 영상의 효과에도 조건이 붙는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그 효과는 정체성 적합 비용이 지나치게 크지 않은 사람들에게 몰려 있었다. 지불 의향이 아주 낮은 사람들은 대체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IT에서 통한 것이 건설에서는 통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같다.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자기를 건설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들의 결론은 교육 시장의 흔한 문법과 어긋난다. 리스킬링을 일반적인 복지나 미래 대비 수단처럼 홍보해서는 규모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직무를 그 자리에 있는 자기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 알리고, 그 기술이 취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강조해야 한다.
연구의 성격도 적어 둔다. 아직 학술지에 실리기 전의 워킹페이퍼이며 사전등록된 연구다. 지불 의향은 가상의 선택에서 추정한 값이고, 실제 행동으로 확인된 부분은 행정 기록으로 따라간 일부 응답자에 한정된다. 이탈리아의 실업 구직자라는 모집단도 분명하다. 다만 이 연구가 가진 드문 강점이 거기 있다. 교육을 지금 고를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리스킬링이 실패할 때 조직은 대체로 두 가지를 의심한다. 시간이 없었거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세 번째 칸을 연다. 그 일을 하는 자기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시간이나 의지와 달리 값으로 잴 수 있었다.
값이 매겨졌으니 다룰 수 있다. 다만 그 도구가 격려문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연구의 요지다. 그 자리에 먼저 간 사람, 수료 뒤의 경로, 그리고 임금과 공석을 적은 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