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어긋났는가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과 일이 주는 것 사이의 어긋남이다. 번아웃 연구가 이 말을 쓰는 이유는 책임의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사람이 약하다는 설명도, 일이 험하다는 설명도 한쪽만 본다. 불일치는 둘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고, 관계는 양쪽에서 손댈 수 있다. 그런데 조직이 손댈 수 있는 폭이 개인보다 훨씬 넓다.
Section Ⅰ · Where It Lives번아웃이 사는 곳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직업적 현상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을 국제질병분류 11판에 넣었다. 넣은 자리가 중요하다. 질병 목록이 아니라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다루는 장이고, WHO는 번아웃이 의학적 질환으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었다.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찾는 이유 중 질병이 아닌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ICD-11이 적은 세 가지는 이렇다. 기력이 소진되거나 고갈된 느낌, 자기 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늘어나거나 부정과 냉소가 생기는 것, 직업적 효능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WHO는 한 줄을 덧붙였다. 번아웃은 직업 맥락의 현상을 가리키므로 삶의 다른 영역의 경험을 설명하는 데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덧붙임이 분류의 뜻을 말해 준다. 번아웃을 사람의 성질로 읽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번아웃에 잘 걸리는 사람이어서 집에서도 번아웃인 것이 아니다. 특정한 일자리에서 특정한 조건과 만났을 때 생기는 상태다. 그래서 그 조건이 바뀌면 상태도 바뀐다.
이 분류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크리스티나 마슬랙과 마이클 라이터가 1980년대부터 쌓아 온 연구가 바탕이다. 두 사람이 만든 측정 도구가 이 분야의 표준이 됐고, 거기서 번아웃은 소진과 냉소, 효능감 저하의 세 축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세 축의 반대쪽 끝을 몰입이라고 불렀다. 높은 기력, 강한 관여, 효능감이다. 번아웃과 몰입이 서로 다른 두 현상이 아니라 같은 세 축의 양쪽 끝이라는 설정이 여기서 중요해진다. 몰입을 올리는 일과 번아웃을 막는 일이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Section Ⅱ · The Six Mismatches여섯 자리의 불일치
어긋나는 자리는
여섯 군데로 정해져 있다
원인을 일에 둔다고 해서 일이라는 말이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으면 조직은 손댈 곳을 찾지 못한다. 라이터와 마슬랙이 한 일이 그 지점이다. 불일치가 생기는 자리를 여섯 군데로 정리했다.
업무량은 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두 저자는 지속 가능하고 다룰 만한 업무량이라면 기존의 기술을 쓰고 다듬을 기회를 준다고 적는다. 같은 분량이라도 배우면서 하는 일인지 소모만 하는 일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통제는 자기 일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개입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다. 그 느낌이 있으면 몰입 쪽으로 간다. 업무량이 같아도 자기가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경우와 통보만 받는 경우가 다르다.
보상은 인정과 대가다. 부족한 인정과 보상은 번아웃에 대한 취약성을 키운다. 공동체는 일에서 맺는 관계의 질이고, 그 관계가 잘 돌아갈 때 사회적 지지가 생긴다. 공정은 직장의 결정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보이는 정도다. 가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거래를 하게 되는지의 문제다. 가치 충돌이 있으면 사람은 그 거래를 매일 치르게 된다.
이 여섯 자리를 두고 두 저자가 정리한 규칙은 간단하다. 사람과 일 사이의 불일치가 클수록 번아웃이 올 가능성이 크고, 일치가 클수록 몰입이 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조직이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지쳤는지가 아니다. 여섯 자리 중 어디가 어긋나 있는지다.
진단의 단위에 대해서도 두 저자는 분명히 썼다. 번아웃은 전염될 수 있고 일터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번져 간다. 그래서 개인의 증후군으로만 보지 말고 작업집단의 성질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한 줄이 실무를 바꾼다. 전사 평균 점수는 서로 다른 팀의 전혀 다른 상태를 하나로 뭉개 버린다. 같은 회사 안에서 한 팀은 공정이 깨져 있고 다른 팀은 업무량이 무너져 있는데, 평균은 둘 다 보통이라고 말한다.
Section Ⅲ · Why the Fix Goes to the Person처방이 사람에게 가는 이유
개인에게 주는 처방은
누구에게도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연구가 말하는 바였다. 이제 조직이 실제로 하는 일을 보면 방향이 반대다. 두 저자가 2016년 리뷰에 적은 문장이 그 간격을 그대로 말해 준다. 상황 요인이 주된 역할을 한다는 연구 증거가 있는데도 강조는 사회적·조직적 전략보다 개인의 전략에 놓여 왔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각 선택의 비용을 따져 보면 보인다. 개인에게 주는 처방은 싸고 빠르다. 호흡법 교육과 명상 앱 구독과 회복탄력성 워크숍은 예산 항목 하나로 끝나고 다음 달에 시작할 수 있다. 참가율과 만족도라는 숫자도 바로 나온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여섯 자리를 고치는 쪽은 전부 반대다. 업무량을 줄이려면 하기로 한 일 중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해야 하고, 통제를 넓히려면 지금 결정하는 사람이 결정권을 내놓아야 하고, 공정을 세우려면 지난번 승진이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모두 누군가 가진 것을 내놓는 일이고, 그래서 회의에서 반대에 부딪힌다. 개인 프로그램은 반대할 사람이 없다. 선택이 쉬운 쪽으로 쏠린 결과가 지금의 분포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는 편이 정직하다. 조직을 고치는 처방이 효과가 증명됐다는 말이 아니다. 두 저자는 같은 대목에서 어떤 접근이 번아웃 위험을 줄이는지 효능을 평가한 연구가 거의 없다고 적었다. 개인 쪽도 조직 쪽도 증거가 얇다. 다만 원인에 대한 증거와 처방의 방향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우리가 많이 사 온 것은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데다 겨냥하는 층도 다르다.
이 지점에서 균형을 다룬 앞의 세 편과 이어진다. Vol. 27은 집중력이 유한한 자원이라는 이야기였고, Vol. 33은 회복이 마음이 일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일어난다는 이야기였고, Vol. 60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하루의 틈이 메워졌다는 이야기였다. 세 편 모두 개인의 하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이번 편은 그 하루를 만드는 층이다. 꺼두는 시간을 권하는 공지를 돌리면서 업무량과 통제를 그대로 두면, 권유는 한 사람 몫의 부담을 더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리더에게는 이 구조가 책임의 문제로 돌아온다. 번아웃을 개인의 회복력 문제로 두면 지친 사람이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된다. 일의 구조 문제로 두면 그 구조를 정한 사람의 문제가 된다. 분류의 자리를 바꾸는 일이 곧 책임의 자리를 바꾸는 일이고, 그래서 이 선택은 조용히 미루기 쉽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흔해지는 동안 그 말의 내용은 오히려 흐려졌다. 지쳤다는 뜻으로 쓰이면 개인의 상태가 되고, 개인의 상태가 되면 처방도 개인에게 간다. 연구가 쌓아 온 내용은 그쪽이 아니었다. 일의 여섯 자리에서 생기는 어긋남이고, 어긋남은 양쪽에서 손댈 수 있는데 조직이 손댈 폭이 훨씬 넓다.
그러니 다음 설문 결과를 받았을 때 물어야 할 것은 점수가 몇 점인지가 아니다. 어느 팀의 어느 자리가 어긋나 있는지, 그 자리를 바꿀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다. 뒤의 질문에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그 보고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