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출처가 있다
이 글에서 '부수 감정'은 지금 내리는 판단과 상관없는 일에서 생겼는데도 그 판단에 스며드는 감정을 말한다. 앞 회의에서 생긴 화, 출근길의 짜증, 방금 받은 메시지가 남긴 불안이 여기 해당한다. 판단 대상에서 나온 감정(통합 감정)은 쓸모 있는 정보가 되지만, 부수 감정은 엉뚱한 곳에서 온 데이터다.
Section Ⅰ · With a Source데이터에는 출처가 있다
감정은 정보다.
다만 주소가 틀릴 수 있다
"감정은 데이터입니다. 명령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수전 데이비드가 2017년 TEDWomen 강연에서 남긴 이 문장은 감정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놓는다. 화가 났다는 사실은 화를 내라는 지시가 되지 않는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건드려졌다는 신호일 뿐이다.
그런데 리더에게는 한 문장이 더 필요하다. 데이터라면 출처를 따져야 한다. 출처가 틀린 데이터는 명령만큼 위험하다. 틀린 곳에서 왔다는 것을 모른 채 믿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 준 고전적 실험이 있다. 1983년 노르베르트 슈바르츠와 제럴드 클로어는 오랜 흐린 날 끝에 찾아온 맑은 봄날과 비 오는 날에 참가자 84명에게 전화를 걸어, 삶 전체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물었다. 맑은 날의 응답자들이 삶에 더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면접자가 먼저 날씨를 언급해 주의를 날씨로 돌리면, 비 오는 날의 낮은 점수가 올라가 차이가 사라졌다. 기분의 출처가 날씨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 기분을 빼고 삶을 평가했다.
논문 제목이 이 글의 질문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기분, 오귀인, 그리고 행복 판단: 감정 상태의 정보적 기능과 지시적 기능」. 감정은 판단에 정보를 건네기도 하고, 판단을 끌고 가기도 한다. 끌려가는 쪽은 대개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때다.
공정하게 덧붙여 둘 것이 있다. 날씨 효과 자체는 이후 대규모 조사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리처드 루카스와 롤리스가 2013년 미국인 100만 명이 넘는 표본을 분석했을 때 그날의 날씨와 삶의 만족 사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 이 실험에서 가져올 것은 날씨가 아니다. 기분이 상관없는 판단에 섞여 들 수 있고, 출처를 의식하면 걸러낼 수 있다는 원리다. 그 원리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뒤의 부수 감정 연구가 보여 준다.
Section Ⅱ · Carryover앞 회의가 뒤 결정에 남는다
화는 다음 안건으로
옮겨 간다
제니퍼 러너 연구팀은 2015년 『Annual Review of Psychology』에서 감정과 의사결정 연구를 정리하며 두 종류를 나눴다. 판단 대상에서 생긴 통합 감정, 그리고 대상과 무관한데 판단으로 흘러드는 부수 감정이다. 투자 제안서를 읽고 느낀 불안은 앞의 것이고, 제안서를 펴기 직전 끝난 언짢은 통화의 불쾌감은 뒤의 것이다. 리뷰는 부수 감정도 결정을 움직이고, 그 방향이 상당히 예측 가능하다고 정리한다.
방향은 감정마다 다르다. 러너와 대커 켈트너의 2001년 연구에서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은 위험을 비관적으로 추정하고 위험을 피하는 선택을 했다. 화난 사람들은 반대로 위험을 낙관적으로 추정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쪽을 골랐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화난 사람의 추정은 두려운 사람보다 오히려 기쁜 사람의 추정에 가까웠다. 연구진은 이 차이를 확실성과 통제감에 대한 평가로 설명했다. 화는 "상황은 분명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함께 싣고 온다.
"감정은 의사결정을 움직이는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예측 가능한 동인이다. 때로는 해롭고 때로는 이롭다." (요지 · Lerner, Li, Valdesolo & Kassam, Emotion and Decision Making, 2015)
리더의 하루로 옮겨 보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열 시 회의에서 약속을 어긴 협력사 때문에 화가 난 채로 열한 시 결재에 들어간다. 결재 안건은 그 협력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신규 투자다. 화는 그 투자의 위험을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아침에 받은 감사 지적 때문에 불안한 날에는 멀쩡한 시도도 위험해 보인다. 결정의 내용보다 결정의 시간표가 결과를 바꾸는 셈이다.
연달아 잡힌 회의는 감정의 출처를 확인할 틈을 없앤다. Vol. 33에서 본 심리적 분리가 하루 단위의 회복이라면, 회의 사이의 5분은 결정 단위의 분리다. 그 5분에 할 일은 쉬는 것보다 묻는 것에 가깝다.
Section Ⅲ · Broadcast리더의 감정은 번진다
숨겨도 새고,
쏟으면 번진다
출처를 가리는 일이 리더 혼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감정은 옮는다. 시갈 바세이드는 2002년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에 실은 실험에서 경영 의사결정 과제를 푸는 소집단에 훈련받은 연기자를 한 명씩 넣고 특정 기분을 연기하게 했다. 기분은 집단 안으로 번졌다. 긍정적인 기분이 번진 집단은 협력이 늘고 갈등이 줄었으며, 과제를 더 잘 해냈다고 느꼈다. 이 변화는 참가자 자신과 다른 구성원, 영상을 본 외부 평가자 모두에게서 확인됐다.
그 실험의 연기자는 리더가 아닌 평범한 구성원 한 명이었다. 평가권도 발언권도 없는 한 사람의 기분이 집단으로 번졌다면, 그 둘을 모두 쥔 리더의 기분이 얼마나 멀리 가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리더의 표정은 팀이 가장 자주 확인하는 데이터다.
그렇다면 감정을 숨기면 될까. 에밀리 버틀러와 제임스 그로스 등이 2003년 『Emotion』에 발표한 실험은 그 길도 막는다. 처음 만난 두 여성에게 속상한 주제로 대화하게 하고, 한 사람에게는 감정 표현을 억누르게 했다. 억누른 사람과 대화한 상대의 혈압 반응이 더 커졌다. 대화의 흐름이 끊겼고, 서로 가까워지는 정도도 줄었다. 표정을 지우는 일은 상대에게 중립적인 신호가 되지 못한다. 읽을 수 없는 얼굴은 그 자체로 긴장을 만든다.
쏟지도 숨기지도 않는 길은 앞의 세 동작 끝에서 짧게 말하는 것이다. "앞 회의 때문에 제가 좀 날이 서 있습니다. 이 안건과는 상관없습니다." 한 문장이면 된다. 출처를 밝히면 팀은 리더의 얼굴에서 엉뚱한 데이터를 읽지 않아도 된다. 날씨를 떠올린 응답자들이 기분을 걸러냈듯, 출처를 들은 팀도 그 기분을 안건과 떼어 놓을 수 있다.
이 일을 기계에 맡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회의 영상과 목소리에서 팀의 기분을 읽어 준다는 도구도 있다. 유럽연합은 이 길을 막았다. AI법 제5조 1항 (f)는 2025년 2월 2일부터 직장과 교육기관에서 생체 데이터로 사람의 감정을 추론하는 AI 시스템을 금지했다. 의료와 안전 목적만 예외다. 전문 제44항은 그 이유로 이런 시스템의 "제한된 신뢰성, 특정성의 부족, 제한된 일반화 가능성"을 든다. 기계가 얼굴에서 읽는 것은 감정의 겉모양이다. 출처는 느낀 사람만 안다(Vol. 31).
이 글의 출발점이 된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감정은 데이터지 명령이 아니다. 조직이 구성원의 감정을 다루는 제도의 문제, 곧 서베이와 면담과 진단의 설계는 필자가 Global Assess 블로그에 쓴 「감정은 데이터지 명령이 아니다」에서 다뤘다. 이 글은 같은 문장을 리더 자신에게 돌려 적용해 본 것이다.
리더가 덧붙일 문장은 이것이다. 데이터에는 출처가 있다. 출처를 묻지 않은 감정은 데이터처럼 보이는 명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