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 Matthias (2004) · Elish (2019) · EU AI Act (2024)
용어 · 이 글에서의 정의
책임의 공백 The Accountability Gap
이 글에서 '책임의 공백'은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AI가 결정을 대신하거나 거들 때, 일은 넘어갔는데 책임을 물을 대상이 흐려지는 상태를 뜻한다. 안드레아스 마티아스가 '책임의 간극'이라 부른, 통제와 책임이 어긋나는 자리다.
Section Ⅰ · The Gap Opens책임이 새는 자리
일은 맡길 수 있어도 책임은 남는다
Vol. 17에서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은 AI에 맡겨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맡긴 것은 일이지 책임이 아니다. 일이 넘어간 자리에서 책임을 물을 대상이 흐려진다.
2004년 안드레아스 마티아스는 이것을 '책임의 간극'이라 불렀다.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는 만든 사람도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게 행동한다. 그러면 잘못이 생겨도 설계자에게도, 운영자에게도 온전히 책임을 지우기 어려워진다. 통제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오래된 원칙이, 학습하는 기계 앞에서 간극을 만든다.
문제는 그 간극이 오래 비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대개 그 자리에는 시스템 전체가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놓인다. 실제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거의 없었는데도.
그러니 물음은 'AI가 결정해도 되는가'를 넘어선다. 결정이 넘어간 뒤, 누가 그 결과에 답할 것인가이다.
The gap
2004년
마티아스가 '책임의 간극'을 제기한 해. 학습하는 기계 앞에서 전통적 책임 귀속이 무너진다 (Ethics and Information Technology)
Crumple zone
2019년
엘리시가 '도덕적 크럼플 존'을 이름 붙인 해. 통제력 없는 사람이 시스템 실패의 blame을 떠안는다
Two people
2명
EU AI Act가 일부 고위험 식별 결정에 요구하는 최소 확인 인원. 자격 있는 둘이 따로 검증해야 한다 (2024)
Human oversight
14조
EU AI Act 제14조: 감독자는 과의존 경향을 경계하고 결과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Section Ⅱ · Where Blame Lands책임은 어디로 떨어지나
공백은 비어 있지 않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떨어진다
책임의 간극이 열리면, blame은 통제력이 아니라 거리를 따라 움직인다. 시스템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로. 셋으로 나눠 보면 그 흐름이 보인다.
Where Responsibility Goes
책임이 흘러가는 세 자리
01
만든 자
The maker · 예측 불가를 방패로
"학습한 결과라 예측할 수 없었다"며 발을 뺀다. 학습하는 기계의 불투명함이 책임을 흐리는 첫 번째 방패가 된다.
02
쓴 자
The operator · 형식 감독을 방패로
"시스템이 하라는 대로 승인만 했다"며 발을 뺀다. 자동화된 답을 무심코 통과시키는 형식적 감독이 두 번째 방패다(Vol. 17의 자동화 편향).
03
붙잡힌 자
The crumple zone · 통제 없이 blame만
실제 통제력은 거의 없었는데 blame은 여기로 떨어진다. 엘리시가 말한 '도덕적 크럼플 존', 곧 시스템의 무결성을 지키려 대신 찌그러지는 사람이다.
“자동차의 크럼플 존이 운전자를 지키듯, 도덕적 크럼플 존은 시스템의 무결성을 지킨다. 그 대가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통제력에 걸맞지 않은 책임을 떠안는다.” (요지 · Madeleine Clare Elish, Moral Crumple Zones, 2019)
Section Ⅲ · Closing the Gap공백을 메우는 설계
희생양이 아니라 통제 있는 자리에 붙든다
공백은 저절로 메워지지 않는다. 편한 희생양으로 채워지거나, 설계로 메워지거나 둘 중 하나다. 책임을 통제가 있는 자리에 붙들어 두려면 다음을 통과해야 한다.
Design Checks · 공백을 메우려면
책임을 통제에 맞추는 다섯 질문
01
결정을 누가 소유하는가?
AI가 거들어도, 그 결정을 소유하고 답할 사람이 이름으로 정해져 있는가.
02
감독이 실질적인가?
도장만 찍는 형식 감독인가, 뒤집을 권한과 시간과 이해를 갖춘 실질 감독인가(EU AI Act 제14조).
03
추적할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결정됐는지 나중에 되짚을 기록이 남는가.
04
통제와 책임을 맞췄는가?
책임이 통제력 있는 자리에 떨어지는가, 아니면 가장 가까운 희생양에게 떨어지는가.
05
배포를 선택으로 인정하는가?
'도구가 그랬다'가 아니라, 그 도구를 그 자리에 들인 것이 우리의 선택임을 인정하는가(Vol. 20).
책임을 설계한다는 것은 잘못을 미리 나눠 두는 일이 아니다. 잘못이 생겼을 때 답할 사람이 통제력 있는 자리에 이미 서 있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공백이 희생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이 편은 Vol. 17과 Vol. 20의 윤리편이다. 무엇을 맡길지 골랐다면(Vol. 17), 그 도구를 들인 것이 선택임을 인정한다면(Vol. 20), 남는 물음은 결과에 누가 답하느냐다. 결정은 위임할 수 있어도, 책임은 위임되지 않는다.
AI가 결정을 대신할수록, 리더가 대신 넘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진다. 떠넘길 수 없는 것, 그것이 책임이다.
Synthesis · Vol. 26
결정은 맡겨도, 책임은 떠넘길 수 없다
AI에 결정을 맡길 수 있다(Vol. 17). 그러나 넘긴 것은 일이지 책임이 아니다. 일이 넘어간 자리에서 책임을 물을 대상이 흐려지는 것, 그 '책임의 공백'은 저절로 메워지지 않는다. 대개 통제력 없는 누군가가 대신 뒤집어쓴다.
그래서 리더의 설계는 책임을 통제가 있는 자리에 붙들어 두는 일이다. 결정을 소유할 사람을 정하고, 형식이 아닌 실질 감독을 두고, 기록을 남긴다. '도구가 그랬다'는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공백을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