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올라온다
새로운 범용 기술이 들어올 때 측정된 생산성이 먼저 내려갔다가 나중에 올라가는 모양을 말한다. 실제 생산성이 그렇게 움직여서가 아니다. 그 기술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투자가 회계에 자산으로 잡히지 않아, 초기에는 비용만 보이고 나중에는 열매만 보이기 때문이다.
Section Ⅰ · Counted as Cost비용으로 적히는 투자
왜 초기에는
숫자가 나빠지는가
증기기관도 전기도 컴퓨터도, 들어오자마자 생산성을 올리지는 않았다. 전기가 공장에 들어온 뒤 생산성이 눈에 띄게 오르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기계를 바꾸는 데는 몇 년이면 됐지만, 공장의 배치를 다시 짜고 작업 방식을 다시 만드는 데 그만큼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브린욜프슨과 록, 시버슨은 이 현상을 하나의 모형으로 정리했다. 범용 기술은 그 자체로 값을 내지 않고 보완 투자를 함께 요구한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새 공정과 새 제품, 새 사업 방식, 그리고 그것을 다룰 사람의 역량이다. 문제는 이 투자가 대부분 무형이라는 점이다.
무형이라는 말은 회계에서 구체적인 뜻을 가진다. 기계를 사면 자산으로 잡혀 여러 해에 걸쳐 나눠 적히지만, 사람을 가르치고 공정을 다시 설계하는 데 쓴 돈은 그해의 비용으로 끝난다. 가치 있는 자산을 만들고 있는데도 장부에는 지출로만 남는다. 국가 통계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두 번의 왜곡이 생긴다. 초기에는 투자는 비용으로 잡히고 산출은 아직 나오지 않으니 측정된 생산성이 실제보다 낮게 나온다. 나중에는 쌓아 둔 무형자산에서 열매가 나오는데 그에 맞는 새 투자는 줄어 있으니 실제보다 높게 나온다. 먼저 내려갔다가 나중에 올라오는 J자가 이렇게 그려진다.
저자들은 이것이 이론에 그치지 않음을 과거 자료로 확인했다. 무형자산을 반영해 다시 계산한 총요소생산성은 공식 통계보다 2004년 말에 11.3%, 2017년 말에 15.9% 높았다. 효과는 특히 소프트웨어에서 두드러졌고 컴퓨터 하드웨어에서는 덜했다.
Section Ⅱ · Two Explanations같은 공백, 다른 해석
효과가 작은 것과
아직 이른 것
지금 AI를 둘러싼 자료의 상당수는 값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Vol. 52에서 다룬 보고서는 기업 AI 도입의 95%가 손익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이 공백을 설명하는 방식이 둘로 갈린다.
한쪽은 효과가 원래 크지 않다는 쪽이다. Vol. 20에서 다룬 아세모을루의 추정이 그렇다. 그는 AI에 노출된 노동 과업의 비중과 그중 실제로 이익이 남게 자동화되는 몫을 곱해, 향후 10년 총요소생산성 증가를 많아야 0.66%로 봤다. 논쟁적인 숫자지만 계산은 투명하다.
다른 한쪽이 이 글의 J커브다. 효과는 있지만 보완 투자를 쌓는 동안에는 숫자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쪽이다. 두 설명은 지금 시점의 자료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이른 것과 없는 것은 숫자에서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둘 다 "아직 값이 안 보인다"로 나타난다.
그래서 공정하게 덧붙일 것이 있다. J커브 논문의 저자들 자신이 AI에 대해서는 신중하다. AI 관련 무형자본이 지금 측정된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작고, 다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평가다. 그러니 "J커브니까 기다리면 된다"는 말은 이 논문을 근거로 쓸 수 없다. 이 논문이 주는 것은 기다릴 명분이 아니라 무엇을 봐야 기다릴 만한지에 대한 기준이다.
그 기준은 논문의 전제에서 바로 나온다. J커브가 그려지려면 보완 투자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야 한다. 돈은 썼는데 공정도 그대로이고 사람의 일하는 방식도 그대로라면, 그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은 J커브의 왼쪽 반이 아니라 그냥 지출이다. 시간이 지나도 올라올 오른쪽이 없다.
Section Ⅲ · How Long얼마나 오래 댈 것인가
기다릴 기간을
미리 적는다
J커브를 아는 리더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다. 모든 부진을 "아직 초기라서"로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설명은 반증하기 어렵다. 성과가 안 나오면 아직 이르다고 하고, 더 안 나오면 더 이르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증할 수 없는 설명은 판단에 쓸 수 없다.
그래서 실무에서 할 일은 단순해진다. 기다릴 기간과 그 사이에 볼 신호를 먼저 적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적는다. 앞으로 네 분기 동안 댄다. 그동안 손익은 보지 않는다. 대신 다시 짠 공정의 수, 바뀐 역할의 수, 전달 소요 시간을 본다. 네 분기 뒤에 이 셋 가운데 둘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접는다.
이렇게 적어 두면 두 가지가 생긴다. 첫째, 조급함에 밀려 일찍 접는 일이 줄어든다. 둘째, 희망에 밀려 늦게까지 끄는 일도 줄어든다. Vol. 17에서 본 가역성의 기준이 여기서도 쓰인다. 되돌릴 수 있는 투자라면 길게 가도 되고, 되돌리기 어려운 투자라면 중간 점검을 촘촘히 둬야 한다.
한 가지 더. 보완 투자라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조직 안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모습이다. Vol. 61에서 본 일곱 가지 기반 역량이 사실상 그 목록이다. 사내 데이터를 쓸 수 있게 정리하는 일, 작게 나눠 일하는 습관, 쓸 만한 내부 플랫폼, 분명히 적힌 사용 방침이다. 새로 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야 하는 것들이고, 쌓이는 동안에는 당연히 숫자가 나빠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의 한계를 적어 둔다. 모형과 과거 자료를 다룬 거시 연구이고, 개별 기업에 그대로 적용되는 공식이 아니다. 산업과 회사마다 보완 투자의 크기도 회수 기간도 다르다. 이 글이 가져오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해석의 틀이다. 값이 안 보일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할 수 있는지를 둘로 나눠 보게 해 주는 틀이다.
J커브가 주는 위안은 조건부다. 지금 숫자가 나쁜 것이 반드시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까지가 이 논문이 말해 주는 전부다. 그다음은 각 조직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증명의 재료는 손익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쌓이고 있는 것들이다.
리더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렇다. 올해 AI에 쓴 돈 가운데 내년에도 남아 있을 것은 무엇인가. 답이 구독 갱신뿐이라면 그것은 J커브의 왼쪽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