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해 봐야 한다
이 글에서 '아웃사이트'는 조직행동학자 허미니아 이바라가 만든 말로, 바깥에서 얻는 통찰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사이트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지난 경험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서 안에서 끌어올리는 깨달음이다. 반면 아웃사이트는 처음 맡아 보는 일, 처음 함께 일하는 사람, 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일해 본 경험처럼 바깥에서 새로 들어오는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이다. 이바라는 리더로 성장하는 데 더 중요한 것이 뒤의 것이라고 본다.
Section Ⅰ · Act First먼저 행동해 본다
생각할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도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다
매일 두 시간씩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 문을 닫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계획은 좋아 보인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되면 새로 생긴 문제, 갑자기 올라온 보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차례로 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그 두 시간은 결국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지 못한다. 리더의 역할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 본 장면이다.
조직행동학자 허미니아 이바라는 2015년에 낸 책 『Act Like a Leader, Think Like a Leader』를 바로 이런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목 그대로 '리더처럼 행동하고, 리더처럼 생각하라'는 책이다. 주인공은 유럽의 한 중견 식품 회사에서 생산을 책임지는 서른다섯 살 관리자 야곱이다. 그는 자기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소방대 같습니다.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으로 뛰어다니며 문제를 고칩니다. 그저 생산이 멈추지 않게 하려고요."
야곱이 이런 고민을 하게 된 데는 사정이 있었다. 회사가 다른 투자자에게 인수되면서 그의 직함은 그대로였지만, 회사가 그에게 기대하는 일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공장을 잘 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업을 어떻게 키울지, 다른 부서와 어떻게 협업을 늘릴지, 빠르게 바뀌는 시장을 어떻게 내다볼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두 시간씩 방해받지 않고 생각하는 시간을 떼어 두기로 했다. 결과는 앞에서 가정한 그대로였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팀원들이 풀어 달라는 새 문제를 들고 찾아왔고, 이바라는 이 방법이 예상대로 통하지 않았다고 적는다.
문제는 시간 관리만이 아니었다. 상사와 동료와 부하 직원이 함께 평가하는 360도 피드백의 결과는 더 아팠다. 부하 직원들은 그가 일의 세부까지 하나하나 관리하는 데 지쳐 있었다. 상사는 그가 다른 부서 동료들과 덜 다투고 더 협력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회사가 앞으로 무엇을 준비하는지를 그는 대개 가장 늦게 알았다. 그의 사무실은 공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가 새로 가져야 할 관점, 곧 회사 전체와 시장을 보는 눈은 그 사무실 안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바라는 여기서 순서의 문제를 짚는다. 많은 리더십 교육은 '먼저 자신을 알고, 그다음에 행동을 바꾸라'고 가르친다. 진단을 받고, 결과를 되돌아보고, 계획을 세운 뒤에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바라는 이 순서가 거꾸로라고 말한다. 생각을 먼저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낯선 행동을 먼저 해 보면 생각이 따라서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변화의 역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유일한 길이 습관적 사고가 우리를 막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해 보는 것이라는 점이다." (Herminia Ibarra, Act Like a Leader, Think Like a Leader, 2015, 1장)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우리가 늘 익숙한 방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익숙한 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려면, 지금의 생각 습관 때문에 피해 온 일을 실제로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주장처럼 들리지만 뿌리는 오래되었다. 이바라 스스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한다. 사람은 덕스럽게 행동함으로써 덕스러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경영학자 리처드 파스칼도 같은 말을 했다. 어른은 생각을 먼저 바꿔서 새로운 행동에 이르기보다, 행동을 먼저 바꿔서 새로운 생각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이바라는 이것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 변화는 밖에서 안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진짜 자아는 내 안을 파고들어 캐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Section Ⅱ · Granted남이 알아봐 줄 때 리더가 된다
리더라는 정체성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여야 할까. 이바라는 그 답을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방식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어떤 관리자가 자기 전문 분야 밖의 문제를 풀겠다고 나서거나, 여러 부서에 흩어진 사람과 자원을 하나의 목표로 묶는 일을 맡았다고 해 보자.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그 행동을 '리더다운 행동'으로 알아보고, 그를 리더로 대하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그는 스스로를 리더로 여기게 되고, 조직은 그에게 더 큰 일을 맡긴다. 더 큰 일은 다시 새로운 행동을 해 볼 기회가 된다. 이 순환이 리더를 만든다.
이 과정을 이론으로 정리한 연구도 있다. 미시간대학교의 스콧 데루와 수전 애시퍼드는 2010년 『Academy of Management Review』에 실은 논문에서, 리더라는 정체성은 한 사람이 혼자 갖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리더로서 나서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따르면서 그 역할을 받아들여 준다. 연구자들은 앞의 것을 '주장', 뒤의 것을 '인정'이라고 불렀다. 이 주고받음이 되풀이되면서 정체성은 본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동료들 사이에서 서로 확인되며, 마지막에는 조직 전체가 인정하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리더는 직함보다 이런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렇게 보면 야곱의 두 시간이 실패한 이유가 하나 더 보인다. 혼자 하는 성찰은 사무실 안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리더로 알아봐 주는 일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개 매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 바깥에 있다. 이바라는 마크 헌터와 함께 떠오르는 리더 30명을 연구해 2007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한 글에서 관리자의 인맥을 세 가지로 나눴다. 지금 맡은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운영 네트워크, 회사 밖에서 관심사를 따라 스스로 맺는 개인 네트워크, 그리고 조직이 앞으로 무엇에 집중할지 읽고 필요한 지지를 모으게 해 주는 전략 네트워크다. 야곱의 인맥은 대부분 회사 안의 운영 네트워크였다. 당장의 문제를 푸는 데는 요긴했지만, 이바라의 표현대로 그의 지금 생각의 틀 바깥으로는 닿지 않았다.
이것은 야곱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바라는 2013년 10월 프랑스 경영대학원 INSEAD의 임원 과정을 마친 관리자 173명에게 설문을 했다. 최근 2년 사이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크게 달라졌다고 답한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승진한 사람은 47%에 그쳤다. 절반이 넘는 사람이 야곱처럼 같은 자리, 같은 직함을 유지한 채 훨씬 큰 역할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바라는 이런 상황을 각자도생 전환이라고 불렀다. 승진이라는 공식적인 인정이 없으니, 리더로 인정받을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전환이라는 뜻이다.
눈여겨볼 점은 이들이 문제를 몰라서 바꾸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설문에서 79%는 '지금까지 당신을 이 자리까지 데려온 방식이 앞으로도 통하지는 않는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도 57%는 일상적인 운영 업무가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답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익숙한 일에 시간을 쓰게 되는 것이다. Vol. 02에서 다룬 것처럼, 지금까지의 강점이 다음 단계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셈이다.
Section Ⅲ · The Closed Room혼자 생각하기가 편해졌다
AI 덕분에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그럴듯해졌다
이제 야곱이 오늘 그 두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자.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AI가 시장 보고서를 요약해 주고, 전략 초안을 여러 버전으로 써 주고, 까다로운 임원과 나눌 대화를 미리 연습시켜 준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 생각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생산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해석이다. 바로 그 편안함이 오히려 사무실 밖으로 나갈 이유를 줄일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AI는 대개 내가 던진 질문에 더 좋은 답을 준다. 그런데 이바라가 말하는 아웃사이트는 내가 미처 던지지 못한 질문에서 온다. 그런 질문은 다른 부서의 동료, 고객, 다른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과 실제로 부딪힐 때 생긴다. 게다가 앞에서 본 것처럼 리더는 누군가 알아봐 줄 때 만들어지는데, 채팅 창 안에는 나를 리더로 알아봐 줄 사람이 없다. Vol. 09에서 이바라가 AI 시대 리더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역량으로 폭넓은 인맥과 다른 산업 사람들과의 교류를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AI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에 쓰는 편이 낫다. 처음 참석하는 회의의 배경을 미리 익히거나, 낯선 분야의 용어를 빠르게 따라잡는 데 쓰는 식이다.
막상 밖으로 나서려고 하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나타난다. '그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라는 생각이다. 이바라는 같은 해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쓴 「진정성의 역설」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그는 분석 업무를 하다가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역할로 옮겨 간 투자은행가와 컨설턴트들을 연구했다. 그중 상황에 맞춰 자신을 유연하게 바꾸는 사람들, 이른바 카멜레온은 잘하는 선배들의 방식을 의식적으로 빌려 쓰면서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 갔다. 반대로 '나다움'을 고집한 사람들은 기술적 실력을 증명하는 데만 매달렸다. 결과는 뼈아팠다. 상사들은 이들이 새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노력 부족으로 받아들였고, 카멜레온에게 준 만큼의 코칭과 멘토링을 이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Vol. 10에서는 진정성을 신뢰를 떠받치는 기둥 가운데 하나로 봤다. 이바라의 경고는 그와 부딪히지 않는다. 진정성이 '지금의 나'를 바꾸지 않을 이유로 쓰이는 순간 성장이 멈춘다는 것이다. 그가 내놓는 처방은 의외로 가볍다. 먼저, 한 사람을 따라 하기보다 여러 사람에게서 배운다. 극작가 윌슨 미즈너의 말처럼 한 사람을 베끼면 표절이지만 여러 사람을 베끼면 연구가 된다. 다음으로, 잘해 내야 한다는 성과 목표 대신 배워 보겠다는 학습 목표를 세운다. 그러면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새로운 모습을 시험해 볼 수 있다. 끝으로,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의 말처럼 정체성이 계속 고쳐 쓰이는 이야기라면, 내 이야기도 새 경험에 맞춰 고쳐 써도 된다.
이 시리즈의 이름은 '리더십 인사이트'다. 그래서 이 글은 조금 멋쩍은 고백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 글을 읽은 시간 역시 야곱이 사무실에서 보낸 두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조직이 리더의 성장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곧 진단과 배치와 인맥 쌓기를 어떤 순서로 놓아야 하는지는 필자가 Global Assess 블로그에 쓴 「성찰로는 리더가 되지 않는다」에서 따로 다뤘다.
그러니 다음 한 주 동안, 평소라면 참석하지 않았을 회의 하나에 들어가 보자. 이바라의 말대로라면, 생각은 그 경험 뒤에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