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낼 수 있는가
이 글에서 '지적 실패'는 뼈아픈 실패를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하버드의 에이미 에드먼슨이 쓴 개념으로, 새로운 영역에서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다 알아본 뒤,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설계한 실험이 낳은 실패를 뜻한다. 조건을 갖추지 못한 실패는 이름이 다르다.
Section Ⅰ · The Flood쏟아지는 실패
실패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AI 도입기의 조직은 실험실을 닮아 간다. 파일럿을 돌리고, 도구를 붙였다 떼고, 프로세스를 바꿔 본다. 실험이 많아지면 실패도 많아진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규모다. MIT의 프로젝트 NANDA가 2025년 내놓은 보고서는 기업들이 300억~400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생성형 AI 파일럿의 95%가 손익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남기지 못했다고 정리했다. 수치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리더 인터뷰 150건과 직원 350명 설문, 공개된 도입 사례 300건을 묶은 결과이고, '완전한 실패'라기보다 아직 손익으로 측정되지 않음에 가깝다.
그래도 보고서가 지목한 원인은 곱씹을 만하다. 모델 성능이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과 도구 양쪽의 학습 격차였다. 외부 벤더의 도구가 내부에서 만든 것보다 두 배가량 자주 성공했다는 관찰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문제는 기술 선택보다 배우는 방식이 갖춰지지 않은 데 있다.
흥미로운 대비도 하나 있다. 공식 구독을 갖춘 기업은 40%인데, 개인 AI 도구를 업무에 매일 쓴다고 답한 직원은 90%였다. 사람들은 이미 배우고 있다. 다만 조직의 장부 바깥에서 배우고 있을 뿐이다. Vol. 11에서 본 섀도 러닝이 사무실에서 섀도 AI로 되풀이되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리더가 마주하는 질문은 "실패를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다. 쏟아지는 실패 가운데 무엇이 배움이고 무엇이 낭비인지 가려낼 수 있는가이다.
Section Ⅱ · Three Types같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를 한 덩어리로 다루면
둘 다 잃는다
에이미 에드먼슨은 실패를 세 유형으로 갈라 본다. 겉으로는 다 같은 '실패'로 보이지만, 원인이 놓인 자리가 다르고 그래서 대응도 달라야 한다.
세 유형을 한 덩어리로 다루면 두 가지를 동시에 잃는다. 전부 감싸면 기본적 실패가 학습으로 포장되어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전부 나무라면 지적 실패까지 사라져 실험이 멈춘다. 관대함과 엄격함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에 무엇을 적용할지 가리는 문제다.
Section Ⅲ · What Makes It Intelligent지적 실패의 조건
실패를 부르기 전에
먼저 통과해야 할 것
그렇다면 어떤 실패를 지적 실패라고 부를 수 있는가. 에드먼슨은 네 가지 조건을 든다. 사후에 붙이는 이름표가 아니다. 시작하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다섯 질문은 실패한 뒤의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작 전에 대부분의 나쁜 실험을 걸러 낸다. 통과하지 못하는 계획은 실패해도 배울 것이 없으니, 애초에 다르게 설계하거나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남는 것은 조직의 몫이다. 실패가 드러나야 가려낼 수 있고, 드러나려면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Vol. 12). 드러난 실패를 유형별로 갈라 볼 눈은 결국 분별의 문제다(Vol. 09). 실패를 잘 다루는 조직은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정확해서 잘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