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 줄
근무 시간 밖에도 업무 연락을 확인해야 한다고 구성원이 읽는 조직의 기대다. 규정과 다르다. 규정은 문서에 적히고, 이것은 적히지 않은 채로도 선다. 밤에 오는 메일, 아침에 빨리 답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반응, 상사가 보내는 시각 같은 것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이것을 하나의 직무 스트레스원으로 두고, 실제로 메일에 쓴 시간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못 박는다.
Section Ⅰ · The Expectation Itself기대 그 자체
열어 본 메일을 빼고도
효과가 남았다
퇴근 후 업무 연락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말은 오래됐고,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대체로 분량이었다. 밤에 몇 통을 처리했는가, 거기에 몇 분을 썼는가. 윌리엄 베커와 류바 벨킨, 서맨사 콘로이, 세라 터스키가 2021년 『Journal of Management』에 실은 연구는 그 분량을 계산에서 빼 보기로 한다.
연구진이 재려는 것은 확인해야 한다는 기대다. 조직이 근무 시간 밖에도 업무 연락을 살피기를 바란다고 구성원이 읽는 정도이며, 저자들은 이것을 메일을 확인하는 빈도나 메일에 쓴 시간과 분명히 다른 개념으로 다룬다.
첫 연구는 경험표집이다. 미국의 직장인 108명을 일정 기간 반복해서 추적하며 그날의 상태를 물었다. 같은 사람 안에서 날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를 보는 방식이라, 원래 불안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섞어 비교하는 문제를 피한다. 결과는 기대가 높았던 날에 불안이 올라갔고, 그 불안이 건강과 관계 갈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무게는 다음 설계에 있다. 연구진은 퇴근 후 업무 연락에 실제로 쓴 시간을 모형에 통제 변수로 넣었다. 몇 분을 썼는지 물어 두고, 그 영향을 빼고 난 뒤에도 기대의 효과가 남는지 본 것이다. 저자들이 그 선택을 설명하는 문장이 분명하다. 시간을 통제하면 실제로 소모된 자원까지 함께 감안하게 되므로, 남은 효과가 정말로 기대 때문이라는 데 더 자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효과는 남았다. 그래서 저자들은 퇴근 후 메일 확인에 대한 규범적 기대를 실제 업무량과 그것을 처리하는 데 쓴 시간을 넘어서는 별개의 스트레스원으로 적는다. 자기들의 앞선 연구를 인용하며 덧붙이는 말이 더 날카롭다. 실제로 일에 관여하지 않은 날에도, 늘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규범이 뚜렷하면 당사자와 그 곁의 사람의 긴장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Section Ⅱ · It Crosses the Door문밖으로 건너간다
계약한 적 없는 사람에게
비용이 간다
두 번째 연구는 짝을 지어 물었다. 정규직 직원과 그 배우자나 동반자 138쌍이다. 한쪽에게만 묻고 상대의 상태를 짐작하는 대신, 양쪽에게 각자 답하게 한 설계다.
직원 쪽에서는 첫 연구의 결과가 다시 나왔다. 기대가 불안을 거쳐 건강과 관계의 질을 깎았다. 그리고 건너가는 효과가 확인됐다. 조직이 그 직원에게 건 기대가 배우자나 동반자의 건강과 관계 만족에까지 닿았다는 뜻이다.
이 결과가 불편한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은 이 회사와 아무 계약도 하지 않았다. 근무 규정에 동의한 적도 없고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조직이 정한 연결 상태의 값 일부를 그 사람이 치르고 있고, 그 사실은 어느 장부에도 적히지 않는다.
토론 부분에 더 눈에 걸리는 관찰이 있다. 저자들은 직원 본인이 그 영향을 덜 알아챌 수 있다고 본다. 일과 일 밖의 경계를 지키려 애쓰는 과정에서 메일에서 온 불안을 관계와 분리해 혼자 담아 두기 때문이다. 반면 곁에 있는 사람은 그 주의가 어디로 가 있는지를 정면으로 받고, 관계의 질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더 또렷하게 안다. 자료만으로 끝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정은 아니라고 저자들도 적지만, 실무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집에서 먼저 말이 나오고 본인은 그 말에 놀란다.
기제를 짚어 두자. 저자들이 쓰는 틀은 자원 보존과 자원 배분 이론이다. 기대가 높으면 사람은 주의의 한 몫을 떼어 올지 모르는 것에 걸어 둬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쓸 자원과 그쪽에 걸어 둘 자원이 충돌하고, 그 충돌이 불안으로 나타난다. 이 설명이 맞다면 한 통도 오지 않은 저녁에도 값이 치러지는 것이 당연해진다. 떼어 둔 몫은 쓰이지 않아도 떼어 둔 것이기 때문이다.
Vol. 33에서 심리적 분리를 다뤘다. 회복은 쉬는 시간의 길이보다 그 시간에 마음이 일에서 떨어져 있었는지에서 온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편은 그 분리를 막는 것의 이름을 댄다. 알림이 아니고 업무량도 아니다. 올지 모른다는 상태다. 그래서 알림을 꺼도, 그날 아무 일이 없어도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Section Ⅲ · Who Can Move It움직일 수 있는 사람
개인이 쥔 손잡이와
조직이 쥔 손잡이
이 연구가 제 손으로 적어 둔 문장 하나가 처방의 위치를 정해 준다. 저자들은 마음챙김 훈련이 불안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다는 선행 연구를 소개한 뒤 이렇게 덧붙인다. 마음챙김은 직원이 통제할 수 있는 실천이고, 메일에 대한 기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Vol. 67에서 번아웃의 원인이 일의 여섯 자리에 있는데 처방은 거의 전부 사람에게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연구는 같은 비대칭을 연구자들이 직접 말해 둔 경우다. 사람 쪽 처방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손잡이를 쥔 사람이 다르다는 뜻이고, 조직이 쥔 손잡이를 쓰지 않은 채 개인에게만 권하면 비용의 자리가 그대로 남는다.
조직 쪽 처방으로 저자들이 드는 것은 두 단계다. 가능하다면 퇴근 후 연락 확인 기대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 가장 낫다. 그것이 늘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그다음에 놓는 것이 경계 관리다. 일부 비근무 시간의 대응이 불가피하더라도, 언제의 연락이 받아들여지는 것인지에 선을 긋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시간 밖 메일 창을 정해 두고 그 밖의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 구분이 실무에서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많은 조직이 퇴근 후 연락을 아예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연구가 말하는 것은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밤 10시에 온 메일에 답해야 하는지를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다면, 그 추측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떼어 둔 주의 한 몫이 돌아온다.
AI를 쓰는 조직에는 여기에 새 결이 붙는다. 에이전트는 밤에도 돌고 아침이면 결과가 쌓여 있다. 보내는 쪽이 사람이 아니어도 확인해야 할 것이 쌓이는 사실은 같고, 쌓인다는 것을 아는 상태가 곧 이 연구가 잰 것이다. 리더가 밤 11시에 도구로 초안을 쓰고 아침 8시에 보내지도록 예약하는 일은 도움이 된다. 알림이 그 시각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으로 지워지는 것은 신호 하나이고, 우리 조직이 언제까지 깨어 있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읽기는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다.
한계를 적어 둔다. 저자들이 직접 꼽은 것부터 보자. 이론의 중심에 둔 자원 배분 갈등을 직접 측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대가 높을 때의 불안이 그 기대를 맞추지 못한 데서 왔을 가능성도 남는다고 적는다. 건강은 자기 보고로 쟀고, 혈압이나 심혈관 반응 같은 실제 측정을 덧붙이면 더 알 수 있으리라는 것도 저자들의 말이다. 경험표집과 횡단 자료를 넘어서는 장기 추적도 숙제로 남겼다.
출처의 상태도 밝혀 둔다. 이 글이 연 것은 저자들이 기관 저장소에 올린 제출본이고, 거기에는 연구 두 건이 실려 있다. 학술지에 실린 판본은 연구가 셋이며, 미국 직장인 162명을 두 시점에 걸쳐 조사한 연구가 더해져 기대라는 개념이 다른 직무 스트레스원과 구별되는 별개의 것임을 뒷받침한다. 이 글의 수치는 직접 읽은 제출본의 것이다.
그래도 이 연구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은 그 모든 한계를 지나서도 남는다. 메일에 쓴 시간을 계산에서 빼고도 효과가 남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부터 리더가 물을 질문이 바뀐다. 우리 사람들이 밤에 일을 얼마나 하는가에서, 우리 사람들이 밤에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로.
퇴근 후 연락을 두고 조직이 세는 숫자는 대개 분량이다. 몇 통이 갔고 몇 분이 걸렸는지. 이 연구가 공들인 일은 그 분량을 빼 보는 것이었고, 빼고도 남는 것이 있었다.
남은 것은 기다리는 상태다. 그것은 메일함에 기록되지 않고, 본인도 뒤늦게 알아채며, 가장 먼저 알아보는 사람은 회사 밖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