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바꿨다
생산 라인에서 이상을 발견한 사람이 당기는 줄, 또는 그 신호를 알리는 표시등을 말한다. 흔히 '라인을 멈추는 장치'로 소개되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르게 본다. 안돈은 멈추는 장치이기 전에 도움을 부르는 장치다. 그래서 이 줄이 작동하려면 부를 때 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Section Ⅰ · The Worst Plant가장 나빴던 공장
사람을 바꾸지 않고
결과를 바꿀 수 있는가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있던 제너럴모터스 공장이 문을 닫았다. 그 공장은 GM 안에서 가장 나쁜 사업장으로 꼽혔다. 예고 없는 파업이 잦았고, 고충 처리 요구가 쌓여 폐쇄 당시 미결 건이 700건을 넘었다. 품질을 일부러 망가뜨리는 일까지 있었다. 결근율은 20%를 넘나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라인에 설 사람이 다섯 중 하나꼴로 비는 공장이었다는 뜻이다.
2년 뒤 같은 건물에서 공장이 다시 열렸다. GM과 도요타가 함께 세운 합작회사 누미였다. 도요타는 미국에서 차를 만들 자리가 필요했고, GM은 도요타의 생산 방식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사람을 뽑는 방식이 뜻밖이었다. 새 사람을 찾는 대신 2년 전 해고된 사람들을 다시 불렀다. 초기 인력의 85% 이상이 예전 프리몬트 노동자였고, 조립 라인만 보면 비율이 더 높았다. 노동조합도 그대로였다.
결과는 알려진 그대로다. 20%를 넘던 결근율은 곧 2%로 내려앉았다. GM에서 가장 나빴던 품질은 1년 만에 GM에서 가장 좋아졌다. 말썽을 일으키던 사람들까지 포함해 같은 사람들이었다. 당시 도요타 쪽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던 존 슉은 뒷날 이 변화를 정리하면서, 바뀐 것은 생산과 관리의 구조뿐이었다고 적었다.
이 사례가 오래 인용되는 이유가 있다. 조직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설명이 사람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도가 문제다, 주인의식이 없다, 세대가 달라졌다는 식이다. 프리몬트는 그 설명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같은 사람들로 보여 준 드문 사례다.
Section Ⅱ · Not a Right but a Duty권리가 아니라 의무
줄을 당기게 하려면
무엇이 먼저 있어야 하는가
누미를 준비하면서 결정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안돈을 설치할지였다. 도요타에게는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넣는 것이었다. GM 쪽 사람들은 미심쩍어했다. 기록에 남은 질문은 이랬다. 이 노동자들에게 라인을 멈출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냐.
권리가 아닙니다. 문제를 발견하면 멈춰야 할 의무를 주려는 것입니다. (도요타 측의 답변 · John Shook, MIT SMR 2010에서 재인용)
단어 하나 차이로 보이지만 운영은 완전히 달라진다. 권리는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바쁠 때, 눈치가 보일 때, 내 책임이 될 것 같을 때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의무는 쓰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 멈춘 사람이 설명을 요구받는 조직과, 멈추지 않은 사람이 설명을 요구받는 조직은 다른 조직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는다. 의무만 지우면 그것은 부담이다. 도요타는 반대쪽에 약속을 걸었다. 줄을 당기면 팀 리더가 작업 주기 안에 도우러 온다는 것이었다. 당시 라인의 작업 주기는 1분 안쪽이었으니, 부르면 1분 안에 사람이 온다는 약속이었다. 수천 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가볍지 않은 약속이다. 그리고 이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에 줄은 계속 당겨졌다. 불러도 오지 않는 경험이 두어 번 쌓이면 그다음부터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설계의 세부도 눈여겨볼 만하다. 줄을 당긴다고 라인이 그 자리에서 서지는 않는다. 정해진 지점까지 움직인 뒤에, 그리고 팀 리더가 멈추기로 판단했을 때 선다. 그 사이에 대개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안돈은 생산을 세우는 장치이기 전에 도움을 부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멈춤의 비용을 낮춰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담 없이 부를 수 있었다.
이 구조는 Vol. 28에서 다룬 문제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심리적 안전감은 말해도 괜찮다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말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정한다. 안돈은 그 '무슨 일'을 미리 정해 둔 장치다. 부르면 온다, 멈춰도 혼나지 않는다, 멈추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
Section Ⅲ · Act Your Way to It행동이 먼저다
생각을 바꿔
행동에 이르기는 어렵다
슉이 이 경험에서 끌어낸 결론은 간단하다. 문화를 바꾸려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 말고 하는 일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가 쓴 문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행동에 이르기보다, 행동을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에 이르는 편이 쉽다.
누미에서 실제로 한 일이 그랬다. 주인의식을 갖자고 교육하는 대신, 문제를 발견하면 줄을 당기게 했다.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신, 품질 문제가 라인을 세우게 만들었다. 서로 돕자고 호소하는 대신, 부르면 1분 안에 오게 했다. 태도가 먼저 바뀌어서 행동이 바뀐 것이 아니라, 행동이 바뀌고 나서 태도가 따라왔다.
슉은 이 해석이 에드거 샤인의 문화 이론과 통한다고 적었다. Vol. 48에서 다룬 그 샤인이다. 샤인은 문화를 바꾸려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관행을 먼저 바꿔야 하고, 그 변화가 성과로 확인될 때 비로소 믿음이 바뀐다고 봤다. Vol. 47에서 본 아웃사이트의 원리도 같다. 생각을 바꿔 행동하려 하지 말고, 먼저 다르게 행동해 본 다음 생각이 따라오게 한다.
이 원리를 지금의 과제로 옮기면 할 일이 분명해진다. AI를 쓰는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며 교육과 선언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누미가 보여 준 것은 할 수 있는 행동과 할 수 없는 행동을 바꾸는 쪽이 빨랐다는 점이다. Vol. 49에서 다룬 문제가 정확히 이 지점이었다. 하지 말라는 지시가 대화창 안에만 있으면 그것은 요청일 뿐이고, 실행 경로에 장치가 있어야 금지가 된다. 멈춤도 같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멈출 수 있는지, 멈추면 누가 오는지가 적혀 있지 않다면 '이상하면 알려 주세요'는 선언에 머문다.
누미는 2010년 봄에 문을 닫았다. GM이 파산 절차를 거치며 합작에서 빠졌고, 공장은 이후 다른 회사의 손에 넘어갔다. 공장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증명된 것은 남았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건물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냈다는 사실이다.
누미의 교훈을 '도요타 방식을 도입하라'로 읽으면 절반만 가져가는 것이 된다. 가져갈 것은 방식이 아니라 순서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사람이 하는 일을 바꿀 수 있는 장치를 먼저 놓는다. 그러고 나면 생각은 대체로 따라온다.
리더가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 조직에서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당길 줄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줄이 없다면,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도 곧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