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은 남지 않았다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이론이다. 19세기 중반 유럽 의학의 지배적 설명이었고, 어리석은 생각도 아니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병이 잘 돈다는 관찰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틀린 이론이 증거 하나로는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Section Ⅰ · The Map지도
사망자 위치를 찍자
한 펌프가 드러났다
1854년 8월 31일, 런던 소호에서 콜레라가 터졌다. 번지는 속도가 무서웠다. 사흘 만에 브로드가 인근에서 127명이 죽었고, 9월 10일까지 사망자는 300명을 넘겼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동네를 떠났고, 거리는 비었다.
의사 존 스노우는 그 동네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그가 한 일은 단순했다. 사망자가 나온 집의 위치를 하나씩 지도에 찍었다. 점이 쌓이자 모양이 보였다. 점들은 브로드가의 한 공용 펌프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난 사망자도 알고 보니 그 펌프 물을 길어다 마시던 사람들이었고, 펌프 바로 옆 양조장 노동자들은 거의 멀쩡했다. 그들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
스노우는 이 그림을 들고 교구 당국을 찾아갔다. 그리고 9월 8일, 당국은 그 펌프의 손잡이를 빼기로 했다. 이야기는 보통 여기서 끝난다. 데이터가 통념을 이겼고, 지도 한 장이 전염병을 멈췄다는 결말이다.
그런데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뒤가 이 글의 본론이다.
Section Ⅱ · What Actually Happened실제로 일어난 일
조치는 얻었고
설명은 남지 않았다
첫째로 짚을 것은 스노우 본인의 기록이다. 그는 손잡이를 빼기 전에 이미 발병이 상당히 줄어 있었고, 그래서 그 우물에 아직 병의 원인이 남아 있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적었다. 지도가 전염병을 멈췄다는 이야기는 그 자신이 주장한 적 없는 결말이다. 유행은 여러 이유로 이미 꺾이고 있었다.
둘째가 더 중요하다. 당국이 손잡이를 뺀 것은 그의 설명을 받아들여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급한 상황에서 해 볼 만한 조치였기 때문에 했다. 비용이 거의 없고 되돌리기 쉬운 조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받아들여졌다.
셋째, 유행이 가라앉자 손잡이는 다시 달렸다. 급한 위협이 사라졌으니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보건위원회는 그해 유행의 원인을 끝내 나쁜 공기로 결론지었다. 당대의 저명한 병리학자는 스노우의 설명을 기이하다고 평했다. 물이 병을 옮긴다는 생각은 당시 의학이 가진 틀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두 가지가 드러난다. 조치를 얻는 일과 설명을 받아들이게 하는 일은 다르다. 앞의 것은 위기와 저비용이 해 준다. 급하고, 해 봐야 손해가 적으면 사람들은 따른다. 뒤의 것은 그것으로 안 된다.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조치는 위기가 지나는 순간 되돌아간다. 그리고 왜 그 조치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Vol. 44에서 다룬 바사호와 비교하면 실패의 모양이 다르다. 그때는 기울기 시험의 결과가 결정권자에게 닿지 못했다. 이번에는 닿았고, 심지어 조치까지 이뤄졌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았다. 증거를 전달하는 문제와 모형을 바꾸는 문제는 별개라는 뜻이다.
Section Ⅲ · How a Doubter Changed반대자가 바뀐 방법
설득한 것은
자료가 아니었다
이 사건에는 덜 알려진 인물이 있다. 그 동네의 보조 사제였던 헨리 화이트헤드다. 그는 미아스마설을 믿었고, 스노우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박하려고 직접 조사에 나섰다. 동네 사람들을 한 집씩 찾아다니며 누가 언제 무엇을 마셨는지 물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그를 알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사를 할수록 스노우의 그림과 맞아떨어졌다. 화이트헤드는 설득됐고, 그다음에는 스노우와 함께 일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을 찾아냈다. 펌프 가까이 있던 결함 있는 오수조와, 그 유행의 최초 환자였던 아기다. 아기의 기저귀를 빤 물이 그 오수조로 갔고, 오수조에서 우물로 샜다. 지도가 가리킨 자리에 실제 경로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설득이 일어난 방식이다. 화이트헤드를 바꾼 것은 스노우가 더 좋은 자료를 보여 줘서가 아니었다. 그가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반박하려는 동기로 시작한 확인이었다. 반대자가 스스로 찾아낸 증거는 남이 들이민 증거와 무게가 다르다.
Vol. 58에서 본 원리와 같은 자리다. 생각을 바꿔 행동에 이르기보다 행동을 통해 생각에 이르는 편이 쉽다. 화이트헤드는 믿어서 조사한 것이 아니라 조사해서 믿게 됐다. 리더가 할 일은 설명을 더 잘 하는 것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직접 해 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쪽에 가깝다.
지금의 조직으로 옮기면 장면이 익숙해진다. 모델이 내놓은 결론이 오래된 통념과 어긋난다. 담당자는 자료를 들고 설명한다. 회의실은 조용히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분기가 지나면 원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가 있다. 손잡이가 다시 달린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긴 발표 자료가 아닌, 가장 회의적인 사람에게 원자료와 재현 가능한 절차를 넘겨 직접 확인하게 하는 일이다.
스노우의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는 그 뒤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1858년에 세상을 떠났고, 콜레라균이 분리된 것은 1883년이다. 증거가 모형을 이기는 데는 보통 한 세대가 든다. 리더가 다룰 수 있는 시간은 그보다 짧으므로, 그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골라야 한다. 되돌릴 수 있는 조치를 먼저 얻고, 그 사이에 반대자가 직접 확인하게 하는 일이다.
브로드가 이야기가 데이터의 승리로만 전해지는 것은 아마 그 결말이 깔끔해서일 것이다. 실제로는 지도도, 설득도, 조치도 있었는데 설명은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되돌아간 손잡이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끌어야 했던 논쟁이었다.
리더가 물어야 할 질문은 그래서 이렇다. 우리가 지난번에 바꾼 것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그대로가 아니라면 그때 얻은 것은 동의가 아니라 양보였고, 양보는 급한 일이 끝나는 순간 회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