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압박하지 않고 설계와 기술로
이 글에서 '의궤'는 왕실의 격식을 적은 문서라는 뜻이 아니다. 국가 사업의 계획과 비용, 자재와 공법, 참여자와 도면을 남김없이 적어 다음 사람이 그대로 다시 할 수 있게 만든 준공 보고서를 뜻한다. 『화성성역의궤』는 그 정점이다.
Section Ⅰ · The Bench사람을 먼저 지었다
성을 쌓기 전에
사람을 길렀다
수원 화성 이야기는 대개 1794년의 착공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이유는 18년 앞에 있다.
정조는 즉위한 1776년, 창덕궁 안에 규장각을 세웠다. 왕실 도서관으로 출발했지만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 기능과 문한(文翰) 기능을 합치고 과거 주관과 문신 교육까지 얹었다.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길러 내는 엔진으로 설계한 것이다.
그 엔진의 중심이 초계문신 제도였다. 1781년부터 정조가 세상을 떠난 1800년까지 열 차례에 걸쳐 138명을 뽑았다. 37세 이하의 젊은 관리를 골라 본래 맡은 일에서 빼 주고 공부와 연구에만 매달리게 했다. 매달 구술시험 두 번과 필기시험 한 번. 정조는 직접 강의했고, 문제를 내고 답안을 채점했다. 마흔이 되면 졸업했고, 그 연구는 국정으로 들어갔다.
인재의 물길도 텄다. 1777년 서얼허통절목을 내고, 1779년 규장각 검서관 네 자리에 서얼 출신을 앉혔다.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재능은 이미 알려졌으나 신분 때문에 관직에 나갈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위계를 뒤엎지 않으면서 막힌 통로를 연 인사였다.
그리고 이 투자는 회수된다. 초계문신을 거친 정약용이 1793년, 화성의 기본 설계에 해당하는 「성화주략」을 올린다. 규장각에서 기른 사람이 규장각에서 배운 것으로 왕의 가장 큰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사람을 먼저 지어 둔 조직에서만 나오는 순서다.
Section Ⅱ · The Speed압박 대신 설계와 기술
서둘렀지만
공짜로 서두르지 않았다
1794년 1월 공사가 시작됐다. 처음 예상은 10년이었다. 실제로는 2년 8개월, 1796년 9월에 끝났다. 큰 토목 공사에서 이만한 단축은 대개 사람을 갈아 넣어 만든다. 화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째, 값을 치렀다. 조선의 대형 토목은 백성을 부역으로 동원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화성에서는 일한 사람에게 품삯을 주었다. 『화성성역의궤』에 적힌 총 공사비는 87만 3,517냥 7전 9푼. 이 장부에는 돌값과 사람값이 함께 들어 있다.
둘째, 먼저 설계했다. 착공 전해에 이미 「성화주략」이 나와 있었다. 파면서 그리는 대신 그리고 나서 팠다.
셋째, 도구를 쥐여 주었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기기도설』을 비롯한 기술서를 내려 주었고, 정약용은 그것을 참고해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었다. 도르래로 작은 힘을 키워 무거운 돌을 올리는 장치다. 사람을 더 부르는 대신 사람의 힘을 키우는 쪽을 골랐다. 정약용은 훗날 「자찬묘지명」에서 거중기 덕에 공사비 4만 냥을 아꼈다고 적었다. 본인의 기록이니 액수는 그의 말로 두더라도, 방향은 분명하다.
세 가지를 합치면 하나의 문장이 된다. 공기 단축은 인력 압박이 아니라 설계와 도구에서 나온다. 오늘의 프로젝트에서도 사정은 같다. 일정이 밀릴 때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이 사람의 저녁 시간이고, 가장 나중에 손대는 것이 설계와 도구다. 화성은 그 순서를 뒤집었다.
Section Ⅲ · The Record기록이 남았다
프로젝트는 끝나고
기록은 남는다
공사가 끝나자 정조는 보고서를 만들게 했다. 『화성성역의궤』다. 축성 계획과 제도, 자재의 출처와 용도, 예산과 임금 계산, 시공 기계, 재료 가공법, 공사 일지, 도면이 모두 담겼다.
촘촘함의 정도가 남다르다. 참여자 1,800여 명의 이름과 사는 곳, 일한 날수, 받은 임금이 적혔다. 석수 642명, 목수 335명처럼 직종별 인원도 남았다. 성을 쌓은 사람들이 익명의 무리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장부에 올랐다.
이 보고서는 1801년에 간행됐다. 정조가 1800년에 세상을 떠난 뒤다. 만든 사람이 그 쓸모를 볼 수 없는 문서였는데도 남겼다.
값은 200년 뒤에 치러졌다. 화성은 전쟁과 세월에 크게 부서졌고 이후 복원됐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됐다.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유산이 될 수 있는가. 답을 준 것이 『화성성역의궤』였다. 상상으로 지어 올린 복원이 아니라 당대의 도면과 기록을 따른 복원임이 확인됐고, 그해 12월 화성은 세계유산이 되었다. 기록이 성을 다시 세운 것이다.
정조의 프로젝트 리더십은 세 순서로 요약된다. 사람을 먼저 짓고(규장각), 값을 치르고 도구를 주고(화성), 다시 할 수 있게 적는다(의궤). 이 순서가 10년 걸릴 공사를 2년 8개월로 줄였고, 그 기록이 200년 뒤 복원의 근거가 되었다.
AI 시대의 리더에게 마지막 항목이 가장 낯설다. 우리는 산출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만들면서,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어느 때보다 적게 남긴다(Vol. 39). 무엇을 도구에 맡겼고 무엇을 사람이 검증했는지,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가 적히지 않으면 그 프로젝트는 끝나는 순간 사라진다.
정조는 자신이 볼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장부를 남겼다. 200년 뒤에 그 장부가 성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