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지워진다
숙련이 쌓일수록 숙련되지 않은 상태를 상상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다. 절차가 자동화되면 하나하나의 단계가 의식에서 내려가고, 그 자리에 매끄러운 하나의 동작만 남는다. 남이 그 일을 하는 장면을 떠올릴 때 우리는 자기 머릿속에 남은 매끄러운 버전을 대입한다. 그래서 막힘과 머뭇거림이 그림에서 빠진다.
Section Ⅰ · The Expert's Blind Spot숙련자의 사각지대
잘할수록
예측이 나빠졌다
Vol. 11에서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다고 썼고, Vol. 65에서 그 일이 실제로 채용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자료를 봤다. 두 편의 결론은 같았다.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편은 그 결론 바로 뒤에 있는 문제를 다룬다.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가르칠 수 있는가.
파멜라 하인즈는 이 질문을 예측 과제로 바꿨다. 전문가와 중간 수준의 숙련자, 그리고 초심자에게 초심자가 복잡한 과제를 끝내는 데 걸릴 시간을 예측하게 했다. 좋은 교육자라면 적어도 이것은 맞혀야 한다. 상대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면 과제를 쪼갤 수도, 기다려 줄 수도 없다.
결과는 숙련도와 예측 정확도가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숙련된 사람일수록 초심자의 수행 시간을 더 못 맞혔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숙련도를 관찰하는 대신 실험으로 조작했다. 사람의 성향 차이 때문일 가능성을 걷어 내려는 설계인데, 결과는 같았다.
가장 정확했던 쪽은 중간 수준의 숙련자였다. 이 대목이 이 연구에서 가장 쓸모 있다. 아직 막히던 기억이 남아 있으면서 과제 전체의 모양을 아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초심자를 가장 잘 읽는다.
조직의 관행은 반대로 간다. 가르치는 일은 대개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간다. 그 사람이 정답을 알기 때문이고, 그렇게 배정하는 것이 공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답을 아는 것과 못 푸는 사람의 상태를 아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Section Ⅱ · Why Debiasing Failed알려 줘도 안 고쳐진 이유
조심한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연구를 읽을 때 흔한 반응이 있다. 그러면 알고 조심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인즈는 그 반응을 미리 시험했다. 과소평가를 줄이려고 고안된 편향 제거 기법들을 붙여 본 것이다.
작동하지 않았다. 자기 지식에 기대는 정도를 실험적으로 줄여도 예측의 정확도는 나아지지 않았다. 더 흥미로운 결과도 있다. 초심자가 무엇을 알지 추정하기 전에 관련 사실을 먼저 공부하게 하자 추정이 오히려 나빠졌다. 알고 있는 것을 더 선명하게 만들수록 모르는 상태를 떠올리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것이 이 편향의 성질을 말해 준다.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겸손해서 고쳐지거나 오만해서 생기는 종류가 아니라,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절차가 자동화되면 단계들이 의식에서 내려간다. 내려간 것은 떠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선임은 진심으로 "이거 금방 해요"라고 말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에게는 사실이고, 그 사실의 범위를 잘못 잡고 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조직이 치르는 대가가 보인다. 후임은 선임의 예측을 기준으로 자기를 잰다. 금방 된다던 일이 사흘 걸리면, 그 차이를 자기 부족으로 읽는다. 가르치는 쪽은 열심히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배우는 쪽은 자기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어긋난 것은 시간 추정이다.
그리고 이 편향은 일정에도 들어간다. 신입이 들어올 자리의 업무량을 선임이 산정하면 대개 빠듯하다. 그 빠듯함은 악의가 없고, 그래서 아무도 고치자고 말하지 않는다. Vol. 70에서 평균으로 계획하는 습관이 꼬리 위험을 못 본다고 썼는데, 여기서는 자기 속도로 계획하는 습관이 배우는 시간을 못 본다.
Section Ⅲ · What Helps Whom누구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가
내가 배운 방식이
지금 그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
가르치는 쪽의 두 번째 함정은 방법에 있다. 슬라바 칼류가와 공저자들이 정리한 전문성 역전 효과가 그것이다. 학습을 돕는 방법의 효과가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달라지고, 때로는 뒤집힌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지식이 적은 사람은 짜인 모범 풀이를 공부하는 쪽이 스스로 문제를 푸는 쪽보다 낫다. 그런데 지식이 쌓이면 순서가 바뀐다. 열린 문제를 직접 푸는 쪽이 더 효과적인 학습 활동이 된다. 초심자에게 도움이 되던 상세한 안내가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방해가 되는 것이다.
두 연구를 겹쳐 놓으면 가르치는 사람의 처지가 분명해진다. 그는 상대가 얼마나 걸릴지 잘못 추정하고, 그 추정을 교정하기도 어렵고, 자기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상대에게 맞을지도 알 수 없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다.
그래서 처방은 노력을 더 쏟는 쪽이 아니고 설계를 바꾸는 쪽이다. 추정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추정을 쓰지 않으면 된다. 신입이 어디서 얼마나 멈췄는지 한 달만 적어 두면, 다음 사람의 일정은 선임의 감이 아니라 그 기록에서 나온다. 그리고 가르치는 자리를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만 맡기지 않으면 된다. 연구가 지목한 가장 정확한 예측자는 중간에 있었다.
지금 이 문제가 커지는 이유도 적어 둔다. AI가 들어오면서 과정이 덜 보이게 됐다. 전에는 후임이 막히면 화면 앞에서 멈춰 있거나 물으러 왔다. 지금은 모델에게 묻고 결과를 들고 온다. 선임이 보는 것은 결과뿐이고, 그 결과까지 가는 동안 무엇을 몰랐는지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사각지대가 원래 있었는데 그 앞에 가림막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Vol. 65에서 첫 칸을 다시 만들라고 썼다. 모델의 출력을 검토하고 반례를 찾고 근거를 되짚는 과제로 채우라는 것이었다. 이번 편은 그 과제를 설계하는 사람에게 단서를 하나 더 준다. 설계자 본인이 그 과제의 난이도를 잘못 볼 가능성이 높다는 단서다. 그러니 설계한 과제를 먼저 중간 숙련자에게 보여 주고, 실제로 걸린 시간을 적어 두는 절차가 붙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연구의 범위를 적어 둔다. 하인즈의 연구는 실험실 연구이고 과제는 기기 조작이었다. 전문성 역전 효과는 주로 교육 장면에서 쌓인 결과다. 조직의 복잡한 업무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다만 두 결과가 가리키는 방향은 실무에서 반복해 관찰되는 장면과 맞는다. 잘하는 사람이 가르치기를 어려워하고, 좋은 가르침이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우리는 대개 시간과 의지에서 찾는다. 바빠서 못 가르치고, 관심이 없어서 안 가르친다는 식이다. 그 설명이 맞는 경우도 많다. 이 연구가 더하는 것은 시간과 의지가 충분해도 남는 간격이다.
그 간격은 잘하게 된 대가다. 능숙해지면서 지워진 기억이고, 지워진 것은 노력으로 되살릴 수 없다. 그러니 되살리려 애쓰는 대신, 아직 지워지지 않은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