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바꿨다
원래 세운 목표를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됐을 때, 남은 자원으로 이룰 수 있는 새 목표를 리더가 공식적으로 갈아 끼우는 일을 말한다. 포기와는 다르다. 포기는 목표를 없애지만, 재정의는 새 목표를 그 자리에 놓는다.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 시점이다. 늦게 바꿀수록 새 목표에 쓸 것이 줄어든다.
Section Ⅰ · The Day the Goal Died목표가 사라진 날
언제 실패를
인정할 것인가
1914년 12월 5일, 인듀어런스호가 남조지아섬의 포경 기지를 떠났다. 목표는 남극 대륙을 걸어서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배에는 스물여덟 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땅을 밟기까지는 497일이 걸린다.
출항 6주 뒤인 1915년 1월 18일, 배는 웨들해의 부빙에 갇혔다. 처음에는 곧 풀릴 것으로 봤지만 얼음은 배를 놓아주지 않았다. 배는 얼음에 붙들린 채 열 달을 떠내려갔다. 그사이 얼음의 압력이 선체를 조여 왔고, 10월 27일 섀클턴은 배를 버리라고 명령했다. 인듀어런스호는 11월 21일 가라앉았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결정의 내용보다 시점이다. 배를 버리던 날, 섀클턴은 대원들을 모아 놓고 대륙 횡단은 끝났다고 말했다. 이제 할 일은 전원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목표를 붙들고 있을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후원자들에게 약속한 일이었고, 자신의 이름을 건 계획이었으며, 아직 장비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날 목표를 접었다.
새 목표가 작동한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전원 귀환이라는 목표는 매일 확인할 수 있는 형태였다. 스물여덟 명이 그대로 있는가, 오늘 누가 얼마나 약해졌는가는 그날 바로 답이 나온다. 막연한 목표는 하루를 설계하지 못하지만, 확인되는 목표는 오늘 할 일을 정해 준다. Vol. 46에서 본 파나마의 스티븐스도 굴착이라는 목표를 기반 건설로 바꾸면서 그날의 작업 지시를 함께 바꿨다.
일찍 접은 덕분에 남은 것이 있었다. 대원들의 체력과 식량, 그리고 방향을 하나로 모을 시간이다. 목표가 바뀌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횡단 장비를 끌고 다녔을 것이고, 썰매와 개와 식량은 쓰이지 않을 계획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Vol. 13에서 정리한 구분이 여기에 걸린다. 배가 얼음에 갇힌 것은 막기 어려운 실패였지만, 갇힌 뒤에도 원래 계획을 붙들고 있는 것은 그렇지 않다.
Section Ⅱ · Keeping the Day하루를 지켰다
계획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두는가
목표를 바꾼 뒤 섀클턴이 관리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하루였다. 부빙 위에 세운 야영지에서 그는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게 했고, 당번을 돌렸고, 관측과 기록을 계속하게 했다. 할 일이 정해져 있으면 하루가 흘러가고, 하루가 흘러가면 사람은 버틴다. 반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에서 일과까지 사라지면, 남는 것은 각자의 불안뿐이다.
짐을 줄이는 장면이 그의 방식을 잘 보여 준다. 배를 버린 뒤 그는 개인 소지품을 한 사람당 2파운드, 약 900그램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금으로 된 담뱃갑과 동전을 눈 위에 던졌다. 영국 왕비에게 받은 성경도 첫 장만 찢어 넣고 나머지는 두고 갔다. 규칙을 만든 사람이 가장 먼저 그 규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예외는 하나였다. 기상학자 허시가 가진 12파운드짜리 밴조는 가져가게 했다. 개인 소지품 제한의 여섯 배가 넘는 무게였다. 섀클턴은 그 악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남극의 밤에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대원들의 상태를 갈랐기 때문이다.
밴조는 가져가야 한다. 그것은 꼭 필요한 정신의 약이다. (Ernest Shackleton, 1915년 · 허시의 밴조를 예외로 둘 때)
사람 배치도 같은 원리로 다뤘다. 그는 텐트를 나눌 때 성격이 맞는 사람끼리 묶지 않았다. 불만이 많거나 다루기 어려운 사람을 자신의 텐트에 두었다. 불만은 리더에게서 멀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이 배치는 친절이라기보다 관리였다. 누구를 어디에 두느냐가 다음 몇 달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계산이 있었다.
그 뒤의 일정은 잘 알려진 그대로다. 1916년 4월 9일 구명정 세 척으로 부빙을 떠나 4월 15일 엘리펀트섬에 닿았고, 4월 24일 섀클턴을 포함한 여섯 명이 제임스 케어드호로 1,300km를 건너 5월 10일 남조지아섬에 도착했다. 세 사람이 36시간에 걸쳐 섬의 산맥을 넘어 포경 기지에 닿았고, 네 번의 시도 끝에 8월 30일 칠레 해군의 예인선 옐초호로 엘리펀트섬의 스물두 명을 데려왔다. 가장 위험한 항해에 그는 자기 이름을 먼저 올렸다.
Section Ⅲ · What He Could Not Reach닿지 못한 변경
반대편에서는
옛 목표가 살아 있었다
이 탐험에는 반대편이 있었다. 대륙을 횡단하려면 반대쪽 로스해에서 누군가 보급소를 놓아 주어야 했다. 횡단대가 도착할 무렵 식량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원선 오로라호와 별도의 지원대가 로스해로 갔다.
1915년 5월 7일, 오로라호가 강풍에 정박지에서 떨어져 나가 표류했다. 배는 얼음에 갇힌 채 떠내려갔고, 케이프 에번스 해안에는 열 명이 고립됐다. 통신 수단은 없었다. 그들은 웨들해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명령대로 했다. 1915년 9월 1일부터 1916년 3월 16일까지, 198일 동안 걸으며 보급소를 놓았다. 당시까지의 어떤 탐험보다 긴 썰매 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펜서스미스가 괴혈병과 탈진으로 숨졌고, 5월에는 매킨토시와 헤이워드가 얇은 얼음 위에서 사라졌다. 살아남은 일곱 명은 1917년 1월 10일에야 구조됐고, 그때 처음으로 자신들의 수고가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놓은 보급소를 쓸 횡단대는 애초에 오지 않았다.
이 대목을 섀클턴의 잘못으로 읽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무선이 없던 시대였고, 그는 알릴 방법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리더십의 관점에서 남는 교훈은 분명하다. 목표를 바꾸는 일은 선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변경이 가장 멀리 있는 현장에 닿아야 비로소 변경이 된다. Vol. 44의 바사호에서 기울기 시험의 결과가 출항 결정에 닿지 못했던 것과 방향만 반대일 뿐 구조는 같다.
오늘의 조직에는 통신 수단이 있다. 그런데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경영회의에서 방향이 바뀌었는데 현장의 한 팀은 석 달 뒤까지 옛 지표로 평가받는다. 예산이 끊긴 프로젝트에 파견된 인력이 계약 만료까지 그 일을 계속한다. 변경은 공지되었고, 닿지는 않았다.
2022년 3월 5일, 인듀어런스호의 잔해가 웨들해 수심 3,008미터에서 발견됐다. 106년 만이었다. 발견 지점은 선장 워슬리가 침몰 당시 기록해 둔 위치에서 5.4해리 떨어진 곳이었다. 위성도 전자 장비도 없던 시대에, 얼음 위에서 육분의로 잰 좌표였다. 배는 잃었지만 기록은 남았고, 그 기록이 한 세기 뒤에 확인됐다.
리더가 물어야 할 질문은 두 가지다. 지금 우리가 붙들고 있는 목표는 아직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목표를 바꿨다면, 가장 멀리 있는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