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내려온다
조직의 계층을 줄이고 한 관리자가 맡는 인원을 늘리는 일을 말한다. 오래된 처방이고, 대체로 같은 약속과 함께 온다. 결정이 현장으로 내려가 빨라진다는 약속이다. 이 글에서 보려는 것은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졌는지, 그리고 지금 다시 벌어지는 평탄화는 무엇이 다른지다.
Section Ⅰ · The Work Spreads일이 아래로 퍼진다
자리가 줄어도
그 일은 줄지 않는다
에이전트를 서너 개 돌리며 일하는 사람의 하루를 뜯어보면 익숙한 장면이 나온다. 아침에 무엇을 할지 정하고, 일을 조각으로 나눠 각각에 맡기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어긋난 것을 발견하면 끼어들어 방향을 고친다. 결과를 받아 쓸 만한지 판단하고, 쓸 만하지 않으면 다시 시킨다.
이것은 관리자가 하던 일이다. 2026년 리더십 쿼털리에 실린 글은 이 변화를 '관리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저자들은 에이전트를 운용하는 직원이 최고 경영진의 일, 중간 관리자의 일, 현장 감독의 일 사이를 계속 오가게 된다고 본다. 목표를 세우는 것은 위쪽 일이고, 일을 배분하고 조율하는 것은 가운데 일이며, 진행을 지켜보고 바로잡는 것은 아래쪽 일이다. 예전에는 세 사람이 나눠 하던 것을 이제 한 사람이 번갈아 한다.
다만 이 글의 성격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현장 실험이나 조사 결과가 아닌, 앞으로의 변화를 정리한 개념적 논의다. 그러니 결론으로 받기보다 질문으로 받는 편이 맞다. 그래도 질문 자체는 날카롭다. 관리라는 일이 아래로 퍼지고 있다면, 그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은 그것을 배운 적이 있는가.
대부분은 없다. 조직에서 관리를 가르치는 시점은 보통 관리자로 승진한 뒤다. 목표를 어떻게 쓰는지, 일을 어떻게 쪼개 맡기는지, 중간에 어떻게 확인하는지, 결과가 나쁠 때 어떻게 되돌리는지를 그때 배운다. 그런데 지금은 승진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일을 먼저 하게 됐다. 도구는 왔는데 훈련은 오지 않았다.
Section Ⅱ · Flattening Is Not New평탄화는 처음이 아니다
층을 걷어낸 뒤
결정은 어디로 갔나
지금의 변화를 새로운 일로만 보면 지난 기록에서 배울 것을 놓친다. 계층을 줄이자는 처방은 40년 가까이 반복돼 왔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길게 추적한 연구가 있다.
라구람 라잔과 줄리 울프는 미국 대기업 300여 곳의 관리직 직무 기술서와 보고 관계, 보수 자료를 모아 1986년부터 1999년까지를 들여다봤다. 평탄화는 분명히 일어났다.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리는 4.5개에서 7개 가까이로 늘었고, 사업부장과 최고경영자 사이의 계층은 줄었다. 가까워진 사업부장들은 보수와 장기 인센티브도 더 받았다. 조직도만 바뀐 것이 아님을 뜻한다.
문제는 무엇이 달라졌느냐다. 평탄화는 늘 같은 약속과 함께 왔다. 층을 걷어내면 결정이 현장으로 내려가 고객에게 빨라지고 책임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울프가 2012년에 내놓은 정리는 그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층을 걷어낸 회사에서 통제와 의사결정이 오히려 위쪽에 더 모이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평탄화가 약속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중간을 걷어내면 위에 있는 사람이 보고를 더 직접 받게 된다. 거르는 사람이 없으니 더 많은 것이 올라오고, 올라온 것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자리를 없애는 일은 하루면 되지만, 권한을 내려보내는 일은 기준과 훈련과 신뢰가 함께 가야 한다. 앞의 것만 하면 뒤의 것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지금의 평탄화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예전에는 중간 관리자의 일이 남은 사람들에게 나뉘었다면, 지금은 그 일의 일부가 도구에게도 간다. 상태를 모으고 정리해 보고하는 일은 Vol. 30에서 본 것처럼 도구가 상당 부분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고, 어긋난 것을 알아보고, 멈출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은 남는다. 그 남은 일이 누구에게 갔는지가 이번 평탄화의 성패를 가른다.
Section Ⅲ · Send the Training Down훈련도 함께 내려보낸다
관리자만의 기술이
더 이상 아니게 될 때
관리 일이 아래로 퍼진다는 전망이 맞다면, 조직이 가장 먼저 손볼 것은 조직도가 아니라 교육 과정이다. 지금 관리자 교육에 들어 있는 항목들을 보면 대부분 실무자에게도 필요한 것이 됐다. 목표를 한 문장으로 쓰는 일, 큰 덩어리를 맡길 수 있는 크기로 쪼개는 일, 맡긴 뒤 어느 시점에 확인할지 정하는 일, 받은 결과물이 쓸 만한지 판단하는 일이 그렇다.
특히 마지막 항목이 중요해졌다. Vol. 56에서 본 것처럼 사람이 보태는 것이 '받아들일지 말지'라는 선택 하나로 줄어들면 그 사람은 안전장치가 되지 못한다. 검수는 기술이고, 기술은 배워야 는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넘길지, 어디를 표본으로 뽑을지, 어떤 신호가 보이면 전체를 다시 봐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조심할 점도 있다. 관리 일이 퍼진다는 말을 '모두가 알아서 한다'로 읽으면 Vol. 39에서 다룬 보이지 않는 청구서가 다시 날아온다. 에이전트를 돌리는 일은 겉으로 산출을 늘리지만, 그 뒤에 목표를 정하고 결과를 검수하는 시간이 숨어 있다. 그 시간이 업무량 계산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은 조용히 소모된다. 새로 생긴 관리 업무를 일로 인정하고 시간으로 잡아 주는 것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중간 관리자의 자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글은 그 자리를 지키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가 하던 일 가운데 무엇이 도구로 가고 무엇이 아래로 가고 무엇이 위로 올라가는지를 적어 보는 일은 해야 한다. 적어 보지 않고 자리만 줄이면, 울프가 관찰한 그대로 결정이 위로 몰린다. 층은 얇아졌는데 윗사람의 결재함만 두꺼워지는 조직이 된다.
관리라는 일은 자리와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자리가 사라지면 그 일은 흩어진다. 흩어진 일을 누가 맡는지 정해 두지 않으면, 절반은 도구에게 가고 절반은 위로 올라가며, 정작 그 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는 비어 있게 된다.
리더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렇다. 우리 조직에서 지금 가장 많은 것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답이 직급표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가 아니라 권한과 훈련이다.